가볍게 즐기는 음주 문화가 확산하면서 국내 주류 시장의 흐름도 변하고 있다. 과거의 ‘부어라 마셔라’하는 폭음 문화에서 벗어나, 소비자들은 “어떻게 즐길 것인지”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소버 라이프(Sober Life)’와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문화의 확산으로 국내 술 소비량도 줄어들고 있다. 소버 라이프는 술에 기대지 않는 삶을, 소버 큐리어스는 상황에 따라 음주를 조절하는 소비를 의미한다. “다들 마시니까 마신다”는 습관적 태도가 아닌 것이다.
지난 2월 발표된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국내 주류 출고량은 2015년 401만4872kL에서 2024년 315만1371kL로 10년간 약 21% 감소했다.
반면 무알코올과 논알코올 맥주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무알코올은 알코올 함량이 0.00%인 제품을, 논알코올은 알코올 함량이 1% 미만인 제품을 가리킨다. 국내 무·논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는 2012년 13억원 수준에서 2023년 644억원으로 확대됐다. 2027년에는 1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주류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 김빠진 보릿물? 앙금 없는 팥빵이 아닐까? "
20일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부족한녀석들 브루어리’를 찾았다. 이곳은 국내 유일의 논알코올 맥주 전문 양조장이다.
부족한녀석들 브루어리의 논알코올 맥주면서도 풍부한 향미와 탄산감이 특징이다.
황지혜(47) 부족한녀석들 대표는 “‘술을 마시기 어려운 날에도 맛있는 수제 맥주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양조장 설립까지 이끌었다”며, “논알코올 맥주는 ‘김빠진 보릿물’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부족한녀석들은 이러한 편견을 깨기 위해 맛과 풍미를 살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족한녀석들 브루어리의 페일에일, 라거, 스타우트 등 다양한 종류의 논알코올 맥주들.
황지혜 대표(오른쪽)와 정근영 이사.
이곳의 맥주는 ‘분쇄 - 매싱 - 여과 - 끓이기 - 냉각·발효 - 숙성’ 과정으로 일반 크래프트 맥주와 동일한 공정으로 생산된다. 핵심은 ‘저알코올 발효용 특수 효모’다.
기존 논알코올 맥주는 완성된 맥주에서 열과 압력으로 알코올을 제거하지만, 부족한녀석들은 발효 단계에서 알코올 생성 자체를 최소화한다. 특수 효모는 맥아즙 당분 중 일부만 발효시키며, 나머지 당분과 풍미 성분은 남겨 크래프트 맥주다운 바디감과 풍부한 향을 유지한다.
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맥주의 재료가 되는 효모, 홉, 맥아.
캔입 공정이 진행되고 있다.
황 대표와 정 이사가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부족한녀석들은 페일에일, 스타우트, 벨지안위트, 헤이지 IPA, 라거 등 다양한 스타일의 논알코올 맥주를 생산한다. 모두 알코올 도수 0.4~0.5% 내외다. 황 대표는 "절주와 건강 관리 문화의 확산, 젊은 층의 음주 소비 감소" 등을 근거로 알코올 대체 음료 시장은 지속해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맥주의 당도를 측정하는 정 이사.
부족한녀석들 브루어리의 제조 시설.
도수가 1% 미만인 논알코올 맥주는 주세법상 주류가 아니다. 식품 발효음료로 분류된다. 따라서 주류 면허 대신 식품 제조시설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HACCP 인증, 정기 자가품질검사, 영양성분 표시 등 식품 관련 규제 적용을 받는다.
" 알코올 없이 즐기는 술자리도 생겼다. "
" 무알코올과 논알코올 제품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공간이 등장한 것이다. "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아티스트보틀클럽’은 알코올이 없거나 함량이 극히 낮은 맥주, 와인, 스피릿 등을 선별해 큐레이션 하는 전문 매장이다. 이곳에는 국내외 제품 약 80종이 구비돼 있다. 이재범(31) 아티스트보틀클럽 대표는 “술을 마시고 싶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마시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했다”며 “기존에 ‘김빠진 맥주’같은 무·논알코올 음료를 경험한 소비자들도 다양한 카테고리를 접하면서 기대치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범 아티스트보클럽 대표가 제품을 진열하고 있다.
무·논알코올 제품은 단순히 술을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음주량을 줄이고 싶은 사람, 운전을 해야 하는 사람, 절주하면서도 술자리의 분위기를 놓치고 싶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술의 본질은 취하기 위한 알코올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경험이 아닐까.
술은 우리들의 이야기 속에서 함께 익어갑니다. [장진영의 술술 푸는 이야기]는 우리 땅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술을 향한 여정입니다. 계절, 장소, 사람과 함께 익어가는 이 땅의 양조장들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