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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지르고도 “난 정의롭다” 당당…잇단 흉악범죄 뒤 끔찍 신호

중앙일보

2026.10.31 14:00 2026.10.3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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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 건물 두 곳에서 연달아 방화한 혐의를 받는 70대 남성 A씨가 서울 수서경찰서로 압송되며 취재진에게 문건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10월 2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 건물 두 곳에서 연달아 방화한 혐의를 받는 70대 남성 A씨가 서울 수서경찰서로 압송되며 취재진에게 문건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공공장소에서 다중을 대상으로 한 흉악범죄가 연이은 가운데 피의자들이 ‘개인적 원한’과 ‘대중의 관심’을 범행 사유로 주장하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소위 ‘묻지마 범죄’로 알려진 이상동기범죄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가 범죄 위험군을 적시에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강남구 역삼동 빌딩 연쇄 방화 피의자인 70대 남성 이모씨를 현존건조물방화치상 및 살인미수 혐의로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방공소청에 송치했다. 이씨는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 신명빌딩과 한양빌딩 내 특허법인 사무실에 잇따라 불을 질러 19명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경찰 조사 중 “특허법인 2곳이 허위 특허등록증을 발급하는 등 나를 속였다고 생각했다”며 “이 일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는 취지로 범행 동기를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달 13일에는 인천 남동구의 대형 상업시설에서 불특정 다수를 노린 흉기 난동 사건이 있었다. 해당 사건 피의자인 최충락(59)은 흉기를 휘둘러 현장에 있던 시민 10명 중 8명을 다치게 한 혐의(살인미수·공공장소 흉기 소지 혐의)로 같은 달 23일 인천지방공소청에 구속 송치됐으며, 경찰 조사 당시 “사회적으로 (불만을) 알리고 뉴스거리를 만들 목적”이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인천 대형 상업시설에서 흉기난동을 벌여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된 최충락이 10월 23일 오전 인천 남동경찰서에서 인천지방공소청으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인천 대형 상업시설에서 흉기난동을 벌여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된 최충락이 10월 23일 오전 인천 남동경찰서에서 인천지방공소청으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다중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강력범죄가 잇따르며 시민 불안도 커지고 있다. 경찰청 등에 따르면 올해 1~9월 전국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은 699건으로, 검거 인원은 647명에 달한다. 공공장소 흉기 소지죄 위반 사건도 지난해 4~12월 626건, 올해 1~8월 567건 발생했다. 해당 기간 검거된 피의자는 총 1164명으로, 이 중 1020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범죄심리학계에서는 최근 잇따른 이상동기 범죄에서 개인의 불만을 정당화하거나 사회에 호소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콜하스 증후군’ 양상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흉기 난동, 연쇄 방화 등 사건은 일종의 ‘사명형 범죄’로, 개인의 불만과 범죄를 공공성을 위한 행위로 치환하며 스스로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양상이 특징”이라고 짚었다.

배 교수는 이어 “범죄의 규모가 크고 피해자가 많을수록 사회적 이목을 끌게 되는데,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 자체가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며 “이 같은 범죄는 유사·모방범죄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최충락 흉기 난동 사건이 직후 역삼동 연쇄 방화 사건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과 소방 당국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10월 21일 합동감식을 하기 위해 화재가 발생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신명빌딩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경찰과 소방 당국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10월 21일 합동감식을 하기 위해 화재가 발생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신명빌딩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실제 2023년에는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등으로 사회적 불안이 확산하던 당시 울산에서 유사 범죄가 발생하기도 했다. 울산지법은 2023년 8월 무직 상태였던 A씨가 상의를 벗은 채 식칼을 들고 행인들을 위협한 사건 관련, A씨에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및 사회봉사를 선고했다. 당시 울산지법은 판결문에 “피고인은 오랜 기간 무직으로 지내며 사회와 가족에 대한 불만을 불특정 사람에 표출”했다며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서 비춰볼 때 범행 자체가 위험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고 적시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범죄를 예방하려면 처벌 강화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위험 신호 조기 포착과 대응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이상 동기 범죄를 단순히 ‘묻지마’로 규정하는 게 아닌, 개인적 원한을 사회에 표출하는 심리 등 범행 배경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며 “국가가 범죄 위험성이 있는 정신건강 고위험군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치료감호 제도를 강화하거나 정신건강 지원책을 확대하는 등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유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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