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63억 달러(약 8조4000억원)의 넘는 가상자산을 탈취한 사건 배후에 북한이 공식 지목됐다. 해커들이 이 돈을 빼내가는 데 걸린 시간은 20분밖에 안 걸렸다. 바이낸스 임직원들은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공포 속에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로이터·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31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바이낸스에서 60억 달러 이상의 가상화폐를 탈취한 사건의 배후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라는 사실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 발생 이후 북한이 해킹 배후로 지목돼 왔지만, FBI가 이를 처음 공식 확인했다.
FBI는 범행 주체가 북한의 정예 해킹조직으로 알려진 ‘트레이더트레이터(TraderTraitor)’라고 지목했다. 그러면서 “트레이더트레이터 활동자들이 탈취한 자산을 주로 이더리움(ETH)으로 전환하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전했다.
FBI는 탈취된 가상화폐가 탈중앙화금융(DeFi)과 즉시 교환 서비스를 통해 다른 가상화폐로 전환되는 방식으로 추가 자금세탁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FBI는 이들이 사용했거나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더리움, 비트코인(BTC), 솔라나(SOL) 지갑 주소 목록을 제시하며 “트레이더트레이터 활동자들이 탈취한 자산을 세탁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주소와 관련되거나 해당 주소에서 유래한 거래를 차단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북한 불법 사이버 범죄 및 가상자산 탈취 활동을 식별, 경감, 저지함으로써 가상자산 커뮤니티를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유지하고 있다”며 제보를 촉구하기도 했다.
앞서 탈취사건은 지난달 29일 오후 4시 20분쯤 발생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있는 바이낸스 보안팀은 1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이 무단으로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하고 경영진에 긴급 보고했다. 바이낸스는 곧바로 고위 임원진을 포함해 약 100명의 위기대응팀으로 대응에 나섰다. 초기 파악된 피해 규모는 10억 달러였으나, 곧 30억 달러로 불어났다. 대응책을 마련하는 사이 해커들은 약 20분 만에 바이낸스의 블록체인 지갑 10곳에서 자산 60억 달러를 빼내갔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당시 임직원들이 계좌에서 자산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탈취 이후에는 추적과 자금 동결을 피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해커들은 거래를 차단하거나 회수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으로 바꾸고, 수천 건의 거래를 통해 자금을 여러 지갑으로 분산했다.
해커들은 오후 5시 탈취한 스테이블코인 가운데 6000만 달러 상당을 가상화폐 대출 플랫폼 'Aave'에 예치했다. 이 스테이블코인은 이더리움 약 2만개(당시 기준 약 4460만 달러 상당)를 빌리는 데 담보로 활용됐다. 자금 동결 기능이 있는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중앙에서 직접 동결하기 어려운 자산으로 바꿔 자금 추적과 동결을 피했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는 자동화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금 이동 경로를 복잡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가상자산 업계가 피해 자금의 거래 차단에 나섰다. 하지만 TRM랩스에 따르면 해커들은 결국 약 24억 달러 상당의 가상화폐 자산을 갖고 빠져나갔다.
TRM랩스는 블록체인마다 거래 승인 방식과 시스템이 다른데도 해커들이 짧은 시간에 여러 지갑에서 자금을 빼돌린 것은 개별 지갑을 해킹한 것이 아니라 바이낸스의 거래 승인 시스템 자체가 뚫렸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북한 해커들의 이번 사이버 공격은 사상 최대 규모뿐 아니라 주요 공격이 불과 20분 동안 이뤄졌을 정도로 속도 면에서도 놀라웠다고 전했다. WP는 “마치 고양이와 쥐의 추격전과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며 “제3자 분석가들에 따르면, 해커들은 가상자산 발행자들이 자금을 동결하려 할 것을 예상하고 탈취한 자금을 여러 지갑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서둘렀다”고 전했다.
바이낸스 공동 최고경영자(CEO) 리처드 텅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성명에서 “이번 공격은 복잡한 공격이었다”며 “공격 과정에서 도구와 흔적을 파괴하는 자폭 장치를 사용해 추적 및 조사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동결된 자산은 약 30억 달러로, 전체 탈취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바이낸스는 사건 발생 당일 오후 5시 15분 공식 입장을 내고 해킹 사실을 인정했다. 이후 추가 공지를 통해 탈취된 토큰의 90%를 보충했다고 밝히고, 11월 1일부터 출금 서비스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