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재충돌을 막으려는 카타르·파키스탄 등의 필사적인 중재 노력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 내 남은 표적을 “10분이면 처리할 수 있다”며 추가 타격 가능성을 거듭 거론했다. 이란 역시 “지리적 제한 없는 대응”을 예고하며 보복 의지를 드러내면서 양국간 군사 충돌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자택에서 열린 핼러윈 행사에서 분장한 참석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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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핵시설 추가 타격 시사…이란 “지리적 제한 없는 대응”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해군·공군·방공망 등 이란 군사력을 이미 무력화했다”며 “한두 곳은 아직 처리해야 하지만, 10분이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가 타격 대상으로는 이란의 지하 핵시설로 알려진 ‘곡괭이산’을 언급하면서 “아주 빨리 처리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재국을 통한 협상에 대해선 “잘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란을 겨냥해 “그들은 그다지 믿을 만하지 않다. 합의할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란에서도 군사적 대응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왔다. 이란 최고지도자실에 따르면 모즈타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같은 날 군 고위 지휘관들과의 회의에서 “어떠한 수준이나 유형의 위협에 대해서도 즉각적이고 강력하며 지리적 제한이 없는 대응으로 맞서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모든 물리적·비물리적 자산을 이란군 타격 범위에 포함할 수 있도록 군사 표적 목록을 전면 갱신하라고도 주문했다. 그리고는 “만일 이란의 적들이 군사적 공격이나 테러를 재개한다면 이런 공격이 언제, 어떤 조건에서 종료될지를 결정하는 주체는 이란 이슬람공화국의 군과 국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란 국영 IRIB 방송에 따르면 아크라미-니아 이란군 대변인은 1일 “새 전쟁이 벌어지면 그 범위는 서아시아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새로운 군사행동에 나서면 접근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든 미국의 시설·장비·병력·이익이 타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향후 분쟁은 이전보다 훨씬 더 길어질 수 있으며 미국 대통령이 그 전쟁의 종식 시기와 조건을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모습이 그려진 이란 테헤란의 한 거리.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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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서 도하로 중재 계속…핵 양보·제재 해제 놓고 이견
미·이란 간 말폭탄 속에서도 중재국들의 외교적 접촉은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카타르 중재단은 지난달 30일 테헤란에서 이란 당국자를 만나 미·이란의 직접 협상 재개를 위한 협의를 12시간 이상 진행했다. 중재단은 협의 내내 백악관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한 외교 소식통은 악시오스에 “긍정적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협의는 다음날 카타르 도하로 이어졌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1일 이란 협상단이 도하에서 중재단과 협의했다”고 보도했다. 카타르 측이 이 과정에서도 미국 협상단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게 로이터의 설명이다.
파키스탄도 협상 타결 가능성에 기대를 나타냈다. 아흐메드 샤리프 차우드리 파키스탄군 공보국장은 지난달 30일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우리가 항상 사용하는 표현은 ‘조심스러운 낙관론’”이라고 말했다. 아심 무니르 파키스탄 군 총사령관이 10월 들어 두 차례 테헤란을 방문한 데 대해선 “긍정적 신호가 없다면 왜 두 번이나 방문하겠냐”고 반문했다. 무니르 총사령관은 지난달 26일 사우디아라비아 국방장관, 튀르키예 정보기관 수장과 함께 테헤란을 찾아 이란 고위 지도부와 회동한 적이 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등 이란 지도부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사우디아라비아·파키스탄·튀르키예 고위급 대표단과 회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재국들의 간절한 노력에도 협상 재개 조건을 둘러싼 미·이란 간 이견은 여전하다. 미국은 협상 재개 조건으로 이란의 핵 관련 양보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반면 이란은 미국의 해상 봉쇄와 동결 자금 해제, 그리고 원유 판매 허용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카타르는 이란이 공습받은 핵시설에 유엔 사찰단의 방문을 허용하면 미국이 일부 제재를 완화하는 절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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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오 “공격 결정 안 해”…백악관 내에선 협상·공습 이견
오는 3일 미 중간선거 결과가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악시오스는 “공화당이 선거에서 크게 지면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군사작전을 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 미 당국자는 악시오스에 “(트럼프 대통령이) 모욕감이나 정치적 박탈감을 느끼면 과감한 행동에 나설 것”이라며 “이란으로선 지금이 합의할 최적의 시기”라고 말했다.
미국은 외교와 군사행동 두 선택지를 모두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지난달 31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재공격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루비오 장관은 또 “협상이 사실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며 “직접 접촉이나 중재자를 통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개적으로는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지만 백악관 내부에선 대응 방향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한다. 이란과 핵 합의에 회의적인 루비오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추가 공습을 지지하는 반면 JD 밴스 부통령, 스티브 윗코프 특사 등은 협상 재개를 선호한다고 악시오스는 분석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제재 효과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에 가깝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 기자회견에서 손짓하며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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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 확전 우려…시리아도 사우디 공동방위 합류 검토
재공격이 이뤄질 경우 충돌은 걸프 지역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이란은 미국이 자국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면 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쿠웨이트·바레인의 석유·가스 시설을 보복 타격하겠다고 경고해왔다.
이란의 보복 우려에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공동방위 체제의 확대도 주목할 대목이다. 아사드 알샤이바니 시리아 외무장관은 지난달 31일 바레인에서 열린 마나마 대화에서 사우디·튀르키예·파키스탄이 체결한 ‘메카 상호방위협정’ 가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