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한 트레이더가 업무를 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인공지능(AI) 투자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던 기업들이 이제는 돈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다. 월가에서는 돈을 빌리는 기업보다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회사의 협상력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챗GPT 개발사 오픈AI는 지난 9월 300억 달러를 목표로 자금 조달을 추진했지만 지난달 목표액을 200억 달러로 100억 달러 낮췄다. 기업가치 평가액도 당초 1조4000억 달러에서 1조2500억 달러로 1500억 달러 하향했다. AI 관련 기술주 매도세 속에 일부 투자자들이 투자 약정 규모를 줄인 영향이다.
경쟁사인 클로드를 개발한 앤트로픽도 자금 조달 비용 상승 우려에 직면했다. FT에 따르면 글로벌 사모투자회사 블랙스톤은 앤트로픽이 연내 투자적격 신용등급을 받을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수정해, “BB급(투기 등급) 또는 그 이상의 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신용등급이 낮으면 기관투자자들의 채권 투자에 제약이 생기고 차입 비용도 높아진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앤트로픽이 AI 칩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한 630억 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 과정에서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은 420억 달러 이상의 대출에 보증 성격의 신용 지원을 제공했다. 블랙스톤 펀드들은 돈을 돌려받는 순위가 낮은 후순위 채무 180억 달러 가운데 90억 달러를 연 10% 이상의 수익률 조건으로 인수했다. 막대한 투자금을 마련하려는 AI 기업이 다른 기업의 신용 지원을 받거나 높은 이자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의미다.
대형 정보기술(IT)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레이팅스는 지난달 30일 메타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신용등급은 ‘AA-’로 유지했지만 AI 설비투자 급증과 현금 흐름 악화를 문제 삼았다. 메타는 올해 AI 인프라 등에 1350억~145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S&P는 2027년 잉여영업현금흐름(FOCF) 적자가 71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메타가 벌어들인 돈보다 사업 운영과 설비 투자에 쓴 돈이 더 많아 그만큼 적자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S&P는 메타의 AI 투자 수익화 능력이 경쟁사보다 제한적이며, 막대한 투자비가 언제 실질적인 수익으로 이어질지 불확실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메타 측은 “S&P의 AI 수익화 역량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향후 사업과 제품에서 창출할 기회가 회사의 견고한 신용도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AI 투자 부담이 주가 조정을 넘어 신용도와 차입 비용 문제로 확산하면서 자금을 공급하는 월가의 협상력은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브로드컴 같은 우량 기업조차 대출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고 전했다. 댄 이바신 핌코 최고투자책임자(CIO)는 WSJ에 “충분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대출기관에 입증해야 하는 기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재무 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이 먼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