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돌아가는 거로 보면 이재명 대통령은 퇴임 후 바로 재판을 받게 될 것 같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공소취소 얘기가 나오지만, 낮은 지지율로 더불어민주당 인사들마저 고개를 가로젓는 상황에서 민심에 거스르는 무리수를 두기는 힘들다. 그런데 그때 있을 재판을 둘러싼 모습은 어떻게 나타날까. 민주당이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해서 정치 지형이 지금과 비슷하다면 특별한 변화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야당이 선거에 승리해서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거나 정권이 교체된다면 어떨까. 그때 법원이 이 대통령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거나 혹은 유죄를 선고하더라도 공범보다 현저히 낮은 형량을 선고한다면 어떻게 될까. 볼 것도 없이 지금의 야당은 대법원장을 상대로 청문회, 국정조사, 탄핵을 들이대면서 사법부를 흔들어댈 것이다.
대통령·여당의 대법원장 흔들기
정권 바뀌면 민주당에 되돌아와
정원 26명 늘리면 100명 못 할까
경쟁적 권위주의는 추락하는 나선
조희대 대법원장이 내년 6월 퇴임하기 때문에 이 대통령은 스스로 임명한 대법원장이 이끄는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원래 14명이던 대법관 숫자를 26명으로 늘리는 법이 통과되었고 이 대통령은 임기 동안 그중 22명을 임명한다. 그 사정만으로도 보수 입장에서는 법원의 편파성을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것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민주당이 그럴 때 활용할 수 있는 선례를 만들어주었다.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회가 나서서 법원을 조롱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장담하지만, 그런 상황이 오면 국민의힘은 지금 민주당이 보여주고 있는 작태보다 더 심한 모습을 보이면 보였지 절대 자제하지 않을 것이다. 보수 진영에도 민주당과 똑같이 강경한 세력이 있다. “저쪽은 대법원장 국정조사를 했는데 왜 우리는 참아야 하느냐”라는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주장 앞에서 사법 독립을 염두에 두고 설득에 나설 보수 정치인을 찾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루칸 웨이는 ‘경쟁적 권위주의(Competitive Authoritarianism)’라는 개념을 내세워 겉으로는 민주주의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권위주의적으로 운영되는 체제를 설명한다.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가능해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지만 권력을 가진 세력이 언론과 사법부 등 견제를 위해 기능해야 할 기구들을 장악해 실질적으로는 권위주의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 초기에 청와대와 민주당에서 연이어 나온 사법부에 대한 선출 권력(대통령·국회의원)의 우위 발언은 알게 모르게 우리 정치가 이러한 체제로 변질하여 가는 논리적 기반으로 작용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자리도 아닌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착각하지 마세요.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입니다. 행정부의 장이 국무총리고, 사법부의 장이 대법원장, 입법부의 장이 국회의장입니다. 국가원수 자리를 (대법원장이) 맞먹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기가 막힌 발언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통령이나 의원들이 하는 일에 사법부가 제동을 거는 것이 법원의 권한을 벗어난 것이라면 도대체 왜 우리 헌법이 삼권분립을 가장 기본적인 장치로 두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한쪽에서 이런 일을 벌이기 시작하면 자동적으로 반대편에서도 반격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는 대법관 정원을 14명에서 26명으로 늘렸다. 명분은 대법원의 과중한 업무 해소라지만,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이 나온 이후에 추진된 증원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런데 만약 국민의힘이 다음 총선에 과반을 차지하게 된다면 반격으로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지 말라는 보장이 있을까? 대선까지 승리하면 국민의힘 출신 대통령이 80명쯤 되는 대법관을 임명해서 법원을 장악할 수 있는데?
나는 경쟁적 권위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정권 교체를 통해 ‘하강하는 나선형 악순환’을 거치면서 점점 더 권위적인 체제로 빠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국정조사나 탄핵을 반대하는 것은 단순히 조 대법원장 개인에 대한 평가가 여권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판결 내용이나 결론에 대한 불만으로 사법부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지옥문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금 우리 헌법질서에 아주 오래 지속할 상처를 남길 일을 시도하고 있다.
얼마 전 방송하러 갔다가 앞 순서에서 인터뷰하던 범여권인 조국혁신당 소속 의원의 얘기를 들은 일이 있다. 대법원장을 바로 탄핵해야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를 텐데 민주당이 머뭇거린다는 말을 거침없이 하고 있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과연 저분은 대한민국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법원장을 탄핵하는 나라가 되는 모습을 생각해봤을까. 암담한 마음이 들었다. 정치가 공동선을 추구하면서 우리 사회를 조금씩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은 이제 먼 기억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