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는 내년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물량이 완판됐고, SK하이닉스는 고객의 HBM 요청 물량이 공급 가능 물량의 두 배를 넘는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3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낸 가운데, 두 회사의 메모리 반도체를 확보하려는 기업들의 ‘예약 전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메모리가 부족해지면서 장기간 공급을 약속해달라는 요청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두 회사는 고객들과 메모리 장기공급계약(Long-Term Agreement·LTA)을 확대하고 있다. LTA는 일정 기간 메모리를 공급·구매하기로 하고 거래 물량과 가격 결정 방식, 예치금 등을 미리 정해두는 계약을 뜻한다. 고객은 필요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고, 제조사는 판매 물량을 예측해 투자·생산 계획을 세우기 수월해진다는 게 장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고객 10곳과 장기계약을 맺고, 추가로 10곳과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계약을 원하는 고객도 AI 업체에서 모바일·자동차·네트워크 업체로 넓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LTA가 확산되면 계약 기반의 안정적인 사업 모델을 정착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30년까지 전체 생산능력의 60~70%를 장기계약에 배정한다는 목표에도 가까워졌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대형 클라우드 기업을 포함한 고객 14곳과 계약을 맺었다. 기간은 통상 5년으로, 일부 고객과는 연장을 협의 중이다. 이미 내년에서 내후년 전체 생산능력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물량의 판매처를 장기계약으로 확보했다. 협의 중인 건까지 합치면 D램·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물량은 2029년까지 사실상 ‘완판’ 상태다. SK하이닉스는 “(현재의 LTA는) 고객과 협의한 가격 범위 내에서 시장 (가격 변동) 상황을 반영하는 구조”라고 밝혔다. LTA로는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고, 나머지 생산능력은 시장 상황 등에 맞춰 활용할 계획이다.
추가 주문도 잇따르고 있다. 삼성전자는 매년 협상으로 계약 기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장기계약을 운영 중인데, 일부 고객과는 이미 연장 협의가 마무리 단계라고 밝혔다. 계약 연장 기간의 요청 물량도 예상을 크게 웃돈다고 덧붙였다. 이어 “기존 계약 구간에 대해서도 추가 공급 요청이 접수돼 중장기 생산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며 생산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만큼 다양한 공급 대응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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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칠까, 안 넘칠까…메모리 공급과잉
현재 시장은 향후 공급과잉을 우려하고 있다. 빅테크(대형 기술기업)의 AI 투자 부담이 커지고 있는 데다 중국 업체들도 증설에 나서고 있어서다. 트렌드포스 등 시장조사업체들은 신규 공장들이 D램 공급량을 본격적으로 늘리는 시점을 2028년 무렵으로 보고 있다. 이런 불안은 주가에도 반영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3분기 합산 영업이익이 190조7743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인데도 지난달 30일 주가는 52주 장중 최고가보다 각각 39.9%, 52.5% 낮았다.
양사는 이 같은 위험에 대비해 증설 속도를 탄력적으로 조절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생산 공간을 먼저 확보한 뒤 수요에 맞춰 장비를 들일 예정이고, SK하이닉스도 용인과 청주 M17의 골조 공사를 앞당기되 클린룸(청정실)은 단계적으로 열기로 했다.
투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 공급이 늘어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2027년 시설 투자 증가분이 2028년 비트 생산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공장 건설, 장비 조달 등에도 시간이 걸리는 데다 공정이 복잡한 차세대 HBM은 생산량을 늘리는 데 제약이 있어 2028년에도 수급이 빠듯할 것이라는 전망을 덧붙였다. 박준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와 달리 투자금액 증가가 생산량 확대로 직결되지 않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메모리 가격 상승세가 예상보다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