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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경쟁 끝났다” 프리미엄 좌석 40% 늘린 항공사 정체

중앙일보

2026.11.01 12:01 2026.11.0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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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규의 머니 스토리
오로라
미국 알래스카항공 소속 보잉 787 드림라이너가 인천공항 1청사 탑승 게이트에 대기하고 있었다. 10시간 정도 타고 가야 할 비행기, 하지만 크지 않아 보였다.

드림라이너 모양도 눈에 띄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잉747이나 에어버스의 A380처럼 위압감을 주지 못한다. 지금은 퇴역한 콩코드처럼 날카롭지도 않다. 그런데 알래스카항공 드림라이너는 눈길을 끌었다. 바로 비행기 꼬리 날개 주변에 그려진 녹색 계통의 오로라 때문이었다.
미국 알래스카항공이 국제선에 투입한 보잉787 드림라이너. 보잉

미국 알래스카항공이 국제선에 투입한 보잉787 드림라이너. 보잉


녹색은 그래픽 디자이너 등이 가장 다루기 어려워하는 색이다. 자칫 촌스럽게 보이기 십상이다. 반면에 알래스카항공 오로라는 촌스럽지 않았다. 30여 년 동안 신문 그래픽을 담당한 중앙일보 한 기자가 “파란색과 절묘하게 조합해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고 평할 정도였다.

고급스러운 느낌! 요즘 알래스카항공 경영진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다. 국제선을 중심으로 프리미엄 전략으로 전환해서다. 뜻밖이다. 글로벌 항공사는 최근 20여 년간 비용과의 전쟁을 벌였다. 단 1원이라도 싸게 좌석을 온라인 판매망에 올리기 위해서다. 이랬던 항공사가 프리미엄 전략을 들고 나왔다. 왜일까?
미국 북서부 중심지인 시애틀. 글로벌 커피체인 스타벅스와 정보통신(IT)의 대표주자 마이크로소프트(MS), 항공기 제작회사인 보잉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알래스카와 하와이안항공 등을 자회사로 둔 알래스카에어그룹(알래스카그룹)이 2026년 9월 29일 ‘애널리스트/ 투자자의 날(Analyst/Investor Day)’을 열었다. 월가의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 등을 상대로 경영전략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알래스카그룹은 한국인의 눈엔 낯설 수 있다. 미 사우스웨스트항공처럼 저비용항공사(LCC)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4대 항공그룹이다. 미 항공업계 사람들 사이에선 ‘서부지역 챔피언(West Coast Championship)’으로 불린다.

시외버스 신세
베니토 미니쿠치 알래스카에어그룹 최고경영자(CEO). 사진 회사

베니토 미니쿠치 알래스카에어그룹 최고경영자(CEO). 사진 회사


애널리스트/ 투자자의 날 베니토 미니쿠치 그룹 최고경영자(CEO)가 무대에 올랐다. 캐나다 출신으로 지금은 알래스카항공에 흡수된 버진아메리카 출신이다. 2021년 그룹 CEO가 됐다.

미니쿠치는 “하와이안항공을 인수한 이듬해인 2025년부터 2027년까지 이익 10억 달러(약 1조3400억원)를 추가로 달성하기 위한 전략(Alaska Accelerate)을 추진해 왔다”며 “기초를 다지는 첫 단계는 끝나고, 이제는 실행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실행 단계는 바로 국제선을 중심으로 프리미엄 좌석을 대규모로 팔아 탄탄한 매출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국내 소상공인들 사이에서 한때 필수 개념으로 통한 ‘객단가(Average Revenue per Customer)’를 최대한 늘리겠다는 얘기다.

실제, 인천에서 출발한 알래스카항공의 보잉787 드림라이너 좌석(통상 300석) 배치가 남달랐다. 칸막이 구조인 비즈니스클래스 좌석이 30석이 넘었다. 여기에다 무릎과 앞좌석 사이 공간이 훨씬 넓은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이 약 80석이나 됐다. 이코노미는 180여 석에 지나지 않았다.

반전이다. 최근까지 세계 항공사들은 저비용 전략에 몰입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무장하고 목적지까지 항공권을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게 된 고객의 눈길을 조금이라도 잡기 위해서다. 이는 국내 항공업계 사람들이 자조적으로 말하는 “비행기가 시외버스가 되는 상황”이었다.

저비용-저가 항공권 시대의 선두주자가 바로 사우스웨스트항공이다. 사우스웨스트는 보잉737 단일 기종을 800여 대 운용하기로 유명하다. 항공기 유지·보수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역사적으로 보면, 프리미엄 전략은 복고이기도 하다. 미 항공사 팬암(팬아메리칸)이 20세기 초 고급 전략을 시작했다. 기내 승무원을 처음으로 배치했다. 해운 여객선 승무원들이 입었던 옷을 항공기 유니폼으로 변형해 기장과 부기장, 기내 승무원들에게 처음으로 입혔다. 현재 기장과 스튜디어스 유니폼의 기원이다.

그 시절 비행기 타는 일은 서민들에겐 잊을 수 없는 체험이었다. 세련된 여성 승무원이 얼굴 가득 미소로 맞아주는 객실에 들어선 뒤 자리잡고 앉으면 고급 호텔 식사를 떠올리게 하는 기내식을 먹을 수 있어서다.

특히, 대한항공이나 싱가포르항공 등 20세기 중반 이후에 국제선에 데뷔한 항공사들은 고급화 전략에 더욱 집중했다. 기내 승무원을 뽑을 때 외모 등을 엄격한 기준으로 적용했다. 외모 차별이 금기시되기 이전 일이다. 남다른 외모가 항공사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했다.
1960년대 팬암 프리미엄 이미지를 소재의 하나로 삼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사진은 레어나도 디캐프리오(가운데)가 주연한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한 장면. 디캐프리오가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로 나와 팬암 조종사인 척하며 은행원을 속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장면에서 그 시절 미국인들의 눈에 팬암 승무원들의 이미지가 어땠는지가 잘 드러난다.

1960년대 팬암 프리미엄 이미지를 소재의 하나로 삼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사진은 레어나도 디캐프리오(가운데)가 주연한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한 장면. 디캐프리오가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로 나와 팬암 조종사인 척하며 은행원을 속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장면에서 그 시절 미국인들의 눈에 팬암 승무원들의 이미지가 어땠는지가 잘 드러난다.


프리미엄 전략은 상당수 항공사를 적자투성이로 만들었다. 특히 온라인 예매 시스템이 본격화한 2000년 이후 프리미엄 전략이 방만한 경영으로 인식됐다.

몇 년 전 카타르에서 열린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기자가 만난 국내 대표 항공사 대표가 “항공업계가 생필품 제조업으로 바뀌고 있다”며 “비용을 줄이는 일이 내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생필품 제조업”은 테크의 세계와는 달리 혁신은 부차적이다. 가격이 싼지 여부가 판매의 열쇠다.

알래스카그룹 사람들은 저비용 전성기를 ‘비용 경쟁 시대’라고 개념화했다. 이 시대 항공사 경영자들은 티켓 값을 1원이라도 낮추기 위해 마른 행주마저 또 짜야 했다. 단거리 비행에서 기내식이 사라진 게 대표적인 현상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마른 행주마저 다시 비틀던 시기 뉴욕증권거래소(NYSE) 항공지수가 게걸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비용과 가격 경쟁이 매출을 늘리기는 했지만, 주주들이 민감한 순이익 증가율이 지지부진해서다.
"윈-윈 시나리오"
알래스카항공 본사는 사실 미 서부인 워싱턴주 시탁(SeaTac)에 있다. 행정구역상 독립됐지만, 대도시 시애틀의 일부로 여겨진다. 이곳 시탁 본사에서 만난 셰인 태킷 대표의 말은 애티튜드를 중시하는 항공사의 리더답게 완곡하지만 뚜렷했다.
셰인 태킷 알래스카항공 대표

셰인 태킷 알래스카항공 대표



Q : 저비용 시대 무엇이 문제였나.
A : 요즘 미국 항공업계에서 볼 수 있는 한 가지 패턴부터 이야기해야 할 듯하다. 최근 3년 사이 항공사 매출액 가운데 뚜렷하게 늘어난 부문은 바로 프리미엄 좌석이었다. 메인 캐빈(알래스카그룹이 부르는 이코노미 좌석의 이름)에서 거둔 연간 매출은 정체 또는 감소세였다. 이는 미 항공업계에서 초저가 모델이 흔들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이유다.


Q : 흐름이 그렇게 된 요인은 따로 있을 듯한데.
A : 우리 알래스카항공의 경우 미 서부 시애틀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의 평균 비행시간이 3시간 이상이다. 많은 경우가 6시간이 넘는다. 비행기 폭이 넓은(광동체) 비행기가 투입되는 국제선의 경우는 10시간 이상이다. 비행시간이 길수록, 프리미엄 이코노미와 비즈니스 클래스를 모두 포함하는 프리미엄 좌석을 원하는 고객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Q : 흥미로운 얘기다.
A : 한 가지를 추가한다면, 아시아와 유럽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현재 미국 인구 특성상 대부분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여행할 때 무엇보다 특별한 경험을 하는 데 돈을 쓸 준비가 돼 있는 듯하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새로운 경험을 사진으로 찍어 SNS 등으로 공유한다. 이런 두 가지 트렌드가 함께 작용하면서 프리미엄 좌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듯하다.


Q : 프리미엄 전략의 파장이 궁금하다.
A : 프리미엄 좌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덕분에 우리 알래스카항공은 경쟁력 있는(더 낮은) 가격으로 나머지(이코노미) 좌석을 팔 수 있게 됐다. 고객이 상급 좌석을 기꺼이 사려고 하기 때문에 나머지 좌석에 더 높은 요금을 매길 필요가 없어졌다. 일종의 윈-윈(win-win) 시나리오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요즘 알래스카그룹 주가는 NYSE항공지수 상승률을 웃돌고 있다. 프리미엄 전략이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더욱이 알래스카그룹은 프리미엄 좌석이 낳은 매출 덕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그리고 미국-이란 전쟁 등 지정학적 갈등으로 빚어진 고유가 충격도 다른 항공사보다는 수월하게 넘어가고 있다.

알래스카그룹은 프리미엄 전략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그룹 소속 알래스카와 하와이안항공의 비즈니스 좌석을 더 고급화한 오로라 스위트(Aurora Suites)와 레이호쿠 스위트(Leihōkū Suites)를 2028년부터 판매한다.
알래스카항공의 오로라 스위트. 사진 회사

알래스카항공의 오로라 스위트. 사진 회사


“프리미엄을 좌석 40%까지”

두 좌석은 침대처럼 수평으로 펼쳐진다. 19인치 대형 모니터가 달려 있다. 승객이 헤드셋의 긴 유선이 꼬이는 불편함에 시달리지 않게 된다. 블루투스 헤드셋이 기본으로 제공돼서다.

프리미엄 좌석은 사실 비싸다. 많은 돈을 낸 승객이 널찍하고 누워갈 수 있는 좌석만으론 만족하지 못할 정도다. 알래스카그룹은 두 본거지인 시애틀과 하와이 지역의 유명 셰프와 계약을 맺고 풀-코스 기내식을 제공한다.

또 승객이 단독 검색대와 입출국 심사 코너를 통과하면 한층 업그레이드된 라운지 서비스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여기에다 비용 경쟁 시대 유명무실해진 리워드(포인트 적립 등)를 부활시켜 강화한다. 승객의 충성도를 강화해 매출의 안정성을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알래스카그룹은 “기종과 노선마다 다를 수 있지만, 한결 넓어진 이코노미를 포함한 프리미엄 좌석이 전체 좌석 가운데 최대 40%대 정도까지 늘려가겠다”고 밝혔다.
알래스카 프리미엄 리저브(Reserve). 한 등급 높은 이코노미 좌석. 알래스카는 프리미엄 리저브란 좌석 브랜드로 판매할 예정이다.

알래스카 프리미엄 리저브(Reserve). 한 등급 높은 이코노미 좌석. 알래스카는 프리미엄 리저브란 좌석 브랜드로 판매할 예정이다.


미국 델타 등 주요 항공사들도 2025년 하반기 이후 프리미엄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루한 항공주를 오랜만에 활기있게 할 가능성이 있는 재료다.

다만 프리미엄 전략도 시장경제의 경쟁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국내 한 투자은행 항공담당 애널리스트는 “항공사가 프리미엄 전략을 추진할 때 보잉이나 에어버스가 만든 아주 제한된 공간(기내) 안에서 고객을 만족시켜야 한다”며 “승객 한 명을 위한 공간을 마음대로 넓힐 수 없기 때문에 포인트 등 리워드 시스템을 강화해 충성도를 확보하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 더중앙플러스 ‘글로벌 머니’
전세계 돈의 흐름, 그 맥을 짚어드립니다.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10

강남규.김현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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