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2027년도 예산안을 “성장 확산 예산”이라고 이름 붙였다. 과감한 재정 지출의 당위성을 내세웠다.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인공지능(AI)과 미래 동력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곳곳의 K자 양극화에 대응하려면 꼭 필요한 투자라는 설명이다. 반론도 적지 않다. 반도체 특수에 따른 일시적 세수 증가가 과도한 지출로 연결돼선 안 된다는 비판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경기 하강에 대비해 탄력적인 재정 운용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을 ‘뚜렷한 V자형 회복세’라고 진단했다. 이 대통령은 “40여 년 만에 잠재성장률이 2년 연속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올해 상반기에만 3.8%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연간 수출 1조 달러 달성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판단은 엇갈린다. 올해 2021년 이후 5년 만에 3%대 성장률이 확실해진 만큼 부진했던 흐름을 끊긴 했다. 하지만 구조적 반등으로 판단하기엔 이르다. 사실상 반도체 단일 품목에 기댄 일시적 호황에 가깝다. 실제로 올해 전체 수출 중 반도체 비중(1~10월 누적)은 42.7%까지 상승했다. 전년 동기(23.4%)보다 무려 19.3%포인트 확대됐다.
물량보단 가격 상승에 기댄 것도 우려할 만한 지점이다. 올해 3분기 반도체 수출금액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23.1% 급등했지만, 물량지수는 15.6% 상승했다. 인텔 주가 폭락 사태 등 전 세계적으로 AI 고점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가격 상승세가 꺾이면 수출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익명을 원한 한 교수는 “코스피가 9000대까지 상승하는 과정엔 환호뿐이었지만 5000대까지 급락한 넉 달 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냐”며 “최근 급증한 세수나 성장률 반등엔 거품이 껴 있다고 보는 게 맞고, 언제 찾아올지 모를 하강 국면에 대비하는 게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짚었다.
올해 정부가 편성한 2027년 예산안은 규모(820조9000억원)와 총지출 증가율(12.8%) 모두 역대 최대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재정 지출 확대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비할 수 없이 높아진 국가의 위상, 비약적으로 커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래 성장동력과 격차 완화에 집중 투자하고, 성장의 기회와 과실을 모두가 골고루 누릴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재정의 기초체력 또한 더 튼튼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가 20년 만에 가장 양호해지고,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51.6%에서 48.3%로 낮아진다”며 “국채를 발행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을 기존 국채 상환에 사용해서 국채의 순증가분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산안에 따른 내년 국고채 총발행 규모는 222조8000억원, 이중 만기 상환 등 차환 발행을 제외한 순증 규모도 최소 90조원대에 이른다. 나랏빚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자연히 내년 국가채무도 올해 본예산 대비 106조원 증가(예산안 기준)한다. 국가채무비율 개선 역시 채무 감소 때문이 아니라 성장률 상승에 따른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최근 재정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해석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3차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현행 제도가 유지될 경우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35년 71.5%, 2045년 97.4%, 2055년 126.3%까지 치솟는다. 정부가 향후 몇 년간 장기 추세 이상으로 들어올 추가 세수를 담아둘 별도의 재정 저수지(미래대응기금)까지 마련한다면서 정작 국가채무 축소엔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미래대응기금은 이번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여야의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이 “잠재성장률 반등을 뒷받침하는 전략적 투자 플랫폼이자, 혁신적인 재정안정 장치”라고 평가했지만, 야당은 미래대응기금 중 여유 재원 104조원 전액을 국채 발행 축소에 쓰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국회 안팎에서는 기금법 제정안에 국회의 견제 장치를 명확하게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 대통령은 이날 “나라 경제는 좋아졌다는데 내 살림은 여전히 팍팍하다는 국민의 절박한 호소, 내 삶이 나아지지 못한다면 성장이 무슨 소용이냐는 이 무거운 질문에 답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진단대로 산업 편중, 청년 실업, 양극화 등 구조적 난제가 산적했지만, 정책적 대응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금∙노동 구조개혁 의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 데다, 재정을 어떻게 활용할지 구체적인 계획도 부족하다”며 “기업과 지역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몇 년 뒤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