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현지시간) 요르단 암만의 요르단대학교 앞에 최근 문을 연 한국 커피 프랜차이즈 '더벤티' 매장. 매장 앞엔 사람들이 모여있다. 암만=한지혜 기자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요르단 수도 암만의 요르단대학교 앞. 낯익은 보라색 간판 앞 기다리는 인파가 눈길을 끌었다. 한국 커피 브랜드 ‘더벤티’의 요르단 2호점이다. 태극기가 그려진 ‘서울 라테’와 한국식 국화빵이 기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직원은 “서울 라테가 인기 메뉴”라며 “금요일 기도 시간 전후로 현지 대학생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요르단 암만의 요르단대학교 앞에 최근 문을 연 한국 커피 프랜차이즈 '더벤티' 매장. 암만=한지혜 기자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요르단 암만의 요르단대학교 앞에 최근 문을 연 한국 커피 프랜차이즈 '더벤티' 매장내부. 앞 매대엔 국화빵이 진열돼 있다. 암만=한지혜 기자
더욱 놀라운 건 대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이었다. 요르단대 한국어 전공생 루페이다(24)는 ‘한국어를 배운 계기’를 묻는 기자의 말에 막힘없이 유창한 한국어로 답했다. 10대 초반 한국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는 “내가 한국어를 선택한 게 아니라 한국어가 나를 선택했다”고 당차게 말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어 단어는 ‘인연’이라며 한국 유학과 취업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요르단 암만의 요르단대 앞 한 카페에서 요르단대 학생 (왼쪽부터)야즈민, 파라하샨, 루파이다가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암만=한지혜 기자
한국과 중동은 약 8000㎞ 떨어져 있다. 하지만 지난달 18~24일 찾은 요르단과 레바논에선 그 거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음식을 즐기고, 한국 자동차를 타는 풍경이 일상 곳곳에 스며 있었다.
암만의 한식당 ‘비빔(Bibim)’에선 현지 손님들이 한국 음식을 나눠 먹고 있었다. 태극기와 한복 장식이 놓인 식당의 메뉴판에는 떡볶이·잡채·김치·만두·빙수 등이 빼곡했다. 한쪽 벽을 채운 대형 종이에는 아랍어·영어·한국어로 쓴 손님들의 낙서와 후기가 가득했다. ‘맛있는 음식’, ‘최고의 장소’라는 영어 찬사부터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한글 인사까지 눈에 띄었다. 인근 마트에는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 검은색 오리지널부터 분홍색 까르보나라까지 종류별로 쌓여 있었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요르단 암만의 한식당 '비빔'에서 현지인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한식을 즐기고 있다. 암만=한지혜 기자
요르단 암만의 한식당 '비빔'에서 판매 중인 돌솥비빔밥, 떡볶이, 파전.(왼쪽부터) 암만=한지혜 기자
요르단 암만의 한식당 '비빔' 방문객들이 남긴 후기들. 아랍어와 영어 등 외국어로 적혀있다. 암만=한지혜 기자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요르단 암만의 대형 마트 '씨타운'에서 판매되고 있는 한국의 라면과 즉석식품들. 암만=한지혜 기자
한류는 국경 너머 레바논에서도 이어졌다. 오전부터 수도 베이루트의 한 거리에는 갓 튀긴 핫도그 냄새가 퍼졌다. 한국식 핫도그 매장 ‘코고와’였다. 하루 평균 손님은 약 50명. 핫도그를 기다리는 한 14세 소년은 “SNS를 보고 찾아왔다. 맛있을 것 같다”며 “김치도 먹어보고 싶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 이후 식재료값이 오르고 매출이 줄었지만 가격은 동결했다.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와 칠면조를 사용하는 등 현지 식문화에도 맞췄다는 게 매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는 한국식 핫도그 전문점 ‘코고와’. 오른쪽은 판매 중인 클래식 핫도그. 베이루트=한지혜 기자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는 한국식 핫도그 전문점 ‘코고와’ 방문객들. 베이루트=한지혜 기자
베이루트의 한 카페에선 한국어를 독학하는 직원 긴와(31)를 만났다. 어린 시절 한국인처럼 생겼다는 놀림을 받고 처음 한국을 알게 됐다는 그는 한국인 기자를 만나자 반갑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놀림의 대상이었던 한국이 이제는 애정의 대상이 된 셈이다. 한국 음식도 직접 만들어 먹는다. 그는 “한국 식재료를 구하기 어려워 어머니와 함께 김치를 담근다”고 말했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요르단 아카바의 아카바의 킹 후세인 국제공항(AQJ)에서 주차된 현지 택시들. 현대차와 기아차들이 대다수다. 아카바=한지혜 기자
한국의 존재감은 도로 위에서도 뚜렷했다. 요르단의 한 택시기사는 “한국에서 온 것 중 자동차가 최고”라고 연이어 치켜세웠다. 베이루트 북동부 도라(Dora)의 자동차 거리에는 현대·기아 로고를 내건 부품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현지 중고차 딜러도 현대·기아차를 주요 판매 차종으로 꼽았다. 기자가 차량 호출 앱으로 이용한 차들 중에도 현대·기아 차량이 적지 않았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레바논 도우라에서 택시로 이용되는 한국 브랜드 차량들. 도우라=한지혜 기자
우버 앱을 통해 호출된 차량들. 연이어 기아 차량들이 호출됐다. 우버 앱 캡처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의 산코 자동차 부품 정비 및 차체 수리 도매업체에 한국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베이루트=한지혜 기자
전쟁의 불안과 경제난 속에서도 한국의 언어와 음식, 자동차는 중동인들의 일상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들에게 한국은 더 이상 화면 속 먼 나라가 아니라, 먹고 배우고 이동하는 생활 속에서 만나는 친숙한 이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