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으로 같이 목욕을 하고, 곧바로 방으로 향한다. 정사가 끝나자 여성이 남성을 꼭 껴안아 준다. 마무리는 뽀뽀. 청춘 남녀 같은 뜨거운 잠자리의 주인공은 73세 할아버지, 72세 할머니다. 2002년 영화 ‘죽어도 좋아’에 담긴 장면 중 일부로, 당시 노인 커플이 직접 성관계에 나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24년 뒤 오늘, 70대 초반 커플의 성관계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80·90대에 ‘죽어도 좋은’ 밤을 보내는 고령층이 적지 않아서다. 초고령화와 의학 발달, 경제력 향상 등을 타고 성생활에 적극적인 이들이 늘어나고, 무조건 터부시하던 인식도 바뀌고 있다. ‘무욕의 존재’로 여겨지던 노인의 성(性)이 달라지고 있다.
95세 A씨는 수십 년간 함께 한 부인을 먼저 떠나보냈다. 부인의 치매 증상이 심해지기 전엔 한 달에 수차례 부부관계를 할 정도로 금슬 좋았다. 하지만 인생의 동반자가 떠나자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러던 올해 초, 서른 살 아래의 여성을 만나게 됐다. A씨 표현을 빌리면 ‘친구 같은 이성’이다. 자연스레 매주 한 번 가량 성관계를 갖게 됐다.
그는 “혼자면 몰라도 같이 있으니 자연히 욕구가 생겼다. 성행위 자체보단 같이 있고 싶다는 정서적 측면이 강하게 영향 미쳤다”고 말했다. 성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데엔 튼튼한 체력도 바탕이 됐다. 90세까지 골프 라운딩을 즐겼고, 지금도 매일 등산을 하는 그는 “처방 약 등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건강이 유지돼야 성생활도 가능하다. 이것도 일종의 운동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000년 76세였던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24년 83.7세로 올라갔다. 이에 맞춰 A씨처럼 나이를 잊고 성관계를 이어가는 이도 함께 늘어난다. 노인들이 적극적으로 건강 관리에 나서고, ‘고개 숙인 남자’도 약·주사나 보형물 수술 같은 의학의 힘 덕분에 성생활이 수월해지는 걸 의미한다.
박경민 기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기질성 발기부전 환자 중 노인 비율은 2021년 27%에서 지난해 33.7%로 꾸준히 증가했다. 80세 이상 초고령자의 관련 약 처방도 빠르게 늘고 있다.
발기부전 치료제 등이 해당하는 ‘기타 비뇨생식기관 및 항문용 약’의 사용액은 2021년 1256억원에서 지난해 1685억원으로 34.2% 증가했다.
강동우 원장(강동우 성의원)은 “예전보다 노인 환자 비중이 늘어난 게 사실이다. 발기부전과 성욕저하 등이 주된 방문 이유”라면서 “여든 넘은 남성이 발기부전 치료 등을 받으러 오는 게 익숙하다”고 말했다.
일부는 자위를 하기 위해 병·의원 문턱을 넘기도 한다. 한 비뇨의학과 전문의는 “대개 부인과 한 달에 한두 번 있는 성관계를 위해 공을 들이는 남성 환자가 많지만, 파트너 없이 자위를 위해 약이나 주사를 처방받는 경우도 있다”라고 전했다.
이는 남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여성 노인 1023명을 조사한 결과, 최근 1년간 성관계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6명 중 1명(16.6%)꼴이었다. 이들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성생활 비율이 낮은 것으로 평가받지만, 적지 않은 수가 육체적 관계를 이어가는 셈이다.
박경민 기자
박은자 보사연 연구위원은 “경제적 여유가 있고 건강 수준도 좋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인으로 새로 진입함에 따라 이전보다 성생활을 활발하게 하는 여성 노인도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여성의 절반 가까이(44.6%)는 월 1회 이상 성관계를 한다고 밝혔다. 최근 1년간 배우자 등과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경험했냐는 질문엔 ‘있음’(25%)보다 ‘없음’(65.5%)이 훨씬 많았다. 마지못해 성생활을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의미다.
실제로 머리 희끗한 부부가 나란히 성 관련 진료실을 찾는 풍경이 늘고 있다. 아직 파트너 몰래 진료받는 환자가 대부분이라지만,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준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부부관계를 한다는 오모(63)씨는 “와이프에게 비뇨의학과 치료 사실을 공유했다”면서 “내가 말하는 것보다 의사 선생님이 직접 설명하는 게 나을 거 같아 의원에도 함께 갔다”고 말했다.
이윤수 원장(이윤수·조성완 비뇨의학과 의원)은 “예전엔 노인 부부끼리도 무조건 성 문제를 쉬쉬했다면, 요즘은 재혼한 부부 등이 같이 진료실에 와서 분위기가 바뀐 걸 실감한다”고 말했다.
성생활 중요하다지만 성상담은 ‘저조’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체·정서적 교감을 아우르는 성생활을 즐기는 고령층은 점점 더 늘어날 전망이다. 보사연 조사 결과, 전기 노인(65~74세)의 59%가 “생활에서 성관계(부부관계)가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46.5%인 후기 노인(75세 이상)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다. 성 문제에 보다 개방적인 베이비부머 세대가 속속 ‘젊은 노인’ 대열에 합류한 영향이다.
건강을 유지하는 후기 노인의 몸과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년에 여든이 되는 강모씨는 현재 애인과 만나면서 여행을 많이 다니고, 월 2~3회 이상 성관계도 갖는다고 밝혔다. 그는 “나만 좋은 게 아니라 두 사람 마음이 맞으니 몸도 맞는 것”이라면서 “건강에 이상 없다면 지팡이를 짚고 다니더라도 성생활은 지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노인의 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무욕의 존재’에 머물러있다. 공공 영역에서 노인 복지·의료 등에 대한 정책은 많아도, 노인 성 문제에 초점을 맞춘 통계나 정책 등은 찾기 어렵다.
각국 전문가들이 논의를 거쳐 올해 발표한 ‘노년층 성생활·성 건강 국제 권고안’은 “노인의 성 건강을 단순한 성 기능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과 개인의 권리에 관한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내놨다. 그러면서 의료적으로 소외된 노년 여성의 성 건강 등을 챙겨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