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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투표권 보호인가, 트럼프 반대인가

Los Angeles

2026.11.02 16:53 2026.11.0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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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사회부 기자

김경준 사회부 기자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기자가 올해 미국 중간선거를 지켜보며 고개를 갸우뚱한 대목이 있다. 바로 유권자 신분증 확인 의무화를 둘러싼 논쟁이다.  
 
한국에서는 투표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서 투표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일은 기본적인 신뢰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에서 이를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한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유권자 신분 확인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엄격한 제도가 유권자의 투표권을 제한할 수 있다며 반대한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저소득층과 소수민족, 고령자 등이 신분증을 발급받거나 갱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료 신분증이 제공되더라도 서류 발급 비용과 교통비, 관공서 방문에 필요한 시간 등이 부담이라는 설명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신분증을 발급받기 어려운 현실이 문제라면, 그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먼저 아닌가. 왜 이를 이유로 신분 확인 의무화에 반대하는 데 무게를 두는가.  
 
신분증은 투표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은행 계좌 개설과 항공기 탑승, 금융거래, 각종 행정서비스 등 일상 곳곳에서 신원 확인이 요구된다. 민주당이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의 권익 보호를 강조한다면, 그들이 신분증을 발급받기 어렵다는 이유만을 내세울 게 아니라 그들이 적법한 신분증을 쉽게 발급받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민주당은 실제 부정투표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유권자 신분증을 의무화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적발된 부정행위가 적다고 해서 예방 장치의 필요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선거제도는 부정행위를 적발하는 것뿐 아니라 유권자들이 결과를 신뢰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  
 
실제로 올해 LA에서는 선거 관련 신원 도용 사건이 잇따라 드러났다. 지난 5월 연방검찰은 스키드로 지역 노숙인 등에게 돈을 주고 유권자 등록을 유도한 혐의로 여성을 기소했다. 9월에는 도용한 유권자 개인정보를 이용해 주민발의안 청원 서명을 조작한 혐의로 3명이 기소됐다. 이 사건들은 투표소에서 다른 사람을 사칭해 투표한 사례는 아니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신원과 서명의 진위를 확인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최근 중국 정부의 공작 활동이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외국 세력의 선거 개입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지난달 어바인의 부동산 중개인 장완잉이 중국 정부의 지시로 라이칭더 대만 총통의 가족을 감시한 혐의로 체포됐고, 5월에는 아일린 왕 전 아케디아 시장이 중국 정부를 위해 불법 대리인으로 활동한 혐의를 인정했다.  
 
두 사건이 미국의 부정투표와 직접 연관된 것은 아니다. 다만 외국 정부의 은밀한 영향력 행사가 현실로 드러난 만큼 유권자 신원 확인과 등록 자격 검증 등 선거의 취약점을 줄이려는 노력은 더욱 중요하다. 선거 보안을 강화하는 일마저 정파적 대립에만 맡겨둬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민주당의 반대는 자당 지지층의 여론과도 거리가 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2년 미국 유권자의 77%가 투표 시 사진 신분증 제시에 찬성했다. 당시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서도 61%가 찬성했다. 지난해 8월 조사에서는 민주당 지지층의 71%가 정부 발급 사진 신분증 확인을 지지했다.  
 
이는 민주당 지지층을 포함한 미국인 다수가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무대의 중심에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유권자 신분 확인을 지지해 왔음을 보여준다.  
 
민주당에 묻고 싶다. 유권자 신분 확인 의무화에 반대하는 이유가 정말 사회적 약자의 투표권을 지키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인가.  
 
민주당이 사회적 약자의 투표권을 걱정한다면, 엄격한 신분 확인에 반대하는 데 그치지 말고 누구나 쉽게 신분증을 발급받으면서도 선거의 신뢰를 지킬 수 있는 대안을 적극 제시해야 한다.  

김경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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