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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간 걸어서 세계일주…29세에 떠나 57세에 돌아온 탐험가

중앙일보

2026.11.02 22:10 2026.11.0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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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탐험가 칼 부시비(57)가 2일(현지시간) 영국 북동부 킹스턴어폰헐의 어머니 앤젤라 부시비 집에 도착해 어머니를 끌어안고 있다. 1998년 11월 칠레 푼타아레나스에서 출발한 부시비는 28년간 약 5만㎞를 걸어 세계를 횡단한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비행기·기차·배·자동차 등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어머니 집까지 걸어가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AP=연합뉴스

영국 탐험가 칼 부시비(57)가 2일(현지시간) 영국 북동부 킹스턴어폰헐의 어머니 앤젤라 부시비 집에 도착해 어머니를 끌어안고 있다. 1998년 11월 칠레 푼타아레나스에서 출발한 부시비는 28년간 약 5만㎞를 걸어 세계를 횡단한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비행기·기차·배·자동차 등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어머니 집까지 걸어가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AP=연합뉴스

29세에 집을 떠난 아들은 57세가 돼서야 돌아왔다. 그사이 어머니는 나이가 들었고, 아들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손녀까지 생겼다. 28년간 4개 대륙을 걸어서 횡단한 영국 탐험가 칼 부시비가 세계 일주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2일(현지시간) AP·로이터통신과 가디언 등에 따르면 부시비는 이날 영국 북동부 항구도시 헐의 퀸 빅토리아 광장에서 시민 수백명의 환영을 받았다. 1998년 11월 1일 칠레 남단 푼타아레나스에서 출발한 지 28년 만이다. 그는 지난 1일 출발 당시와 같은 날짜에 험버 다리를 건너 헐에 도착한 뒤 이날 고향에서 공식 환영 행사를 가졌다.

짐을 실은 손수레를 끌고 광장에 나타난 부시비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이제 정말 끝난 건가”라고 농담했다. 시민들이 악수를 청하고 사진을 찍으려 몰려들자 그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모두 길을 가리켜 달라”고 말했다. 수레에는 약품과 침낭, 헤드랜턴 등 생필품이 실려 있었다. 첫 번째 수레가 고장 나 새로 마련한 것으로, 그는 이를 ‘비스트 2’라고 불렀다.

환영 행사를 마친 그는 어린 시절 살던 집까지 약 5㎞를 더 걸었다. 집 앞에는 ‘아들아,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어머니 앤절라가 대문 앞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눈물 속에 서로를 끌어안았다. 부시비가 “조금 변하셨네요”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나이가 들었잖니”라고 답했다. 부시비는 “우리 둘 다 그렇죠. 그동안 잘 버텨주셨어요”라고 말했다.
영국 탐험가 칼 부시비(가운데 왼쪽)가 2일(현지시간) 영국 북동부 킹스턴어폰헐에서 환영 행사를 마친 뒤 어머니 집으로 걸어가며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1998년 11월 칠레에서 출발한 부시비는 28년간 약 5만㎞를 걸어 세계를 횡단했다. AFP=연합뉴스

영국 탐험가 칼 부시비(가운데 왼쪽)가 2일(현지시간) 영국 북동부 킹스턴어폰헐에서 환영 행사를 마친 뒤 어머니 집으로 걸어가며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1998년 11월 칠레에서 출발한 부시비는 28년간 약 5만㎞를 걸어 세계를 횡단했다. AFP=연합뉴스


집 안에서는 36세 아들 애덤과 12세 손녀도 기다리고 있었다. 부시비는 손녀를 이날 처음 만났다.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지는 10년이 지났다. 그가 고향을 떠날 당시 8세였던 아들은 어느새 성인이 됐고, 가족의 삶도 크게 달라졌다.

부시비가 세운 원칙은 단순했다. 세계 일주를 마치기 전에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자동차·배·비행기 등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원칙에 따라 약 5만㎞를 걷고 헤엄쳤다. 베링해협의 얼어붙은 바다를 건넜고, 카스피해와 영국해협은 수영으로 통과했다.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한 뒤 아시아와 유럽을 거쳐 영국으로 돌아왔다. 이동 거리는 3만6000마일(약 5만8000㎞), 방문 국가는 30개국으로 집계됐다.

여정의 출발에는 아버지의 생일 카드가 있었다. 육군 출신인 아버지 키스는 1990년대 중반 카드에 특수부대원 두 명이 런던에서 뉴욕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지를 놓고 논쟁했다는 이야기를 적었다. 당시 해수면이 낮았을 때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했던 베링 육교를 통해 인류가 이동했을 것이라는 가설에서 착안한 이야기였다. 모험을 좋아했던 부시비는 이를 계기로 세계 일주를 구상했다. 영국 육군 공수부대에서 복무한 뒤 1997년 전역했고, 이듬해 실제 여정에 나섰다.
영국 탐험가 칼 부시비가 28년간의 세계 도보 횡단 여정 막바지인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영국 링컨셔주 마켓레이즌 인근을 걷고 있다. 1998년 칠레에서 출발한 부시비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어머니가 사는 헐까지 걸어가는 여정을 이어왔다. AP=연합뉴스

영국 탐험가 칼 부시비가 28년간의 세계 도보 횡단 여정 막바지인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영국 링컨셔주 마켓레이즌 인근을 걷고 있다. 1998년 칠레에서 출발한 부시비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어머니가 사는 헐까지 걸어가는 여정을 이어왔다. AP=연합뉴스


당초 그는 5년이면 여정을 마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2001년 콜롬비아와 파나마 사이의 험준한 정글 지대인 다리엔 갭을 통과한 뒤 파나마에서 18일간 구금됐다. 멕시코에서는 총기로 위협받았고, 베링해협을 건너 러시아에 도착한 뒤에는 불법 입국 혐의로 체포돼 추방 위기에 놓였다. 북극곰과 맞닥뜨리고 얼어붙은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도 있었다.

러시아를 통과하는 데만 거의 10년이 걸렸다. 비자 문제와 기상 여건 때문에 이동할 수 있는 기간이 제한됐고, 2012년 러시아가 비자 발급을 거부하자 부시비는 항의의 뜻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워싱턴DC의 러시아대사관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후원금이 끊긴 데 이어 코로나19 팬데믹과 각국의 복잡한 출입국 절차도 여정을 지연시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이동 경로를 다시 짜야 했다. 러시아와 이란을 거치는 육로 이동이 어려워지자 2024년 카자흐스탄에서 아제르바이잔까지 카스피해 약 288㎞를 31일 동안 헤엄쳐 건넜다. 지난달에는 영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영국해협을 수영으로 통과했다. 해저터널을 걸어서 건너겠다는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바다를 직접 건너기로 한 것이다.

 영국 탐험가 칼 부시비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영국 링컨셔주 마켓레이즌 인근을 걷고 있다. 28년간 세계를 걸어서 횡단한 부시비는 어머니가 사는 헐로 향하는 마지막 구간을 걷고 있었다. AP=연합뉴스

영국 탐험가 칼 부시비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영국 링컨셔주 마켓레이즌 인근을 걷고 있다. 28년간 세계를 걸어서 횡단한 부시비는 어머니가 사는 헐로 향하는 마지막 구간을 걷고 있었다. AP=연합뉴스

부시비는 자신의 여정을 ‘21세기 오디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여정의 절반은 환경의 문제였고 나머지 절반은 행정적·지정학적 문제였다”며 “때로는 기다리는 것만이 해결책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28년 가운데 걸어서 이동한 기간은 약 15년이었다고 밝혔다. 여정을 중단해야 할 때마다 마지막으로 멈춘 지점으로 돌아가 다시 출발했다.

오랜 여정이 끝났지만 부시비는 아직 귀향의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오늘 느낀 감정을 설명하기 어렵다”며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하나의 크고 흐릿한 덩어리처럼 뒤섞여 있다”고 말했다. 또 “나를 이곳까지 데려오는 데는 말 그대로 전 세계가 필요했다”며 “개인부터 국가까지 수많은 사람이 도왔다. 혼자 해낸 일이 아니다”고 했다.

그의 귀향길에는 독일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초크와 촬영팀도 동행했다. 헤어초크는 28년간의 여정을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 ‘워크 오브 라이프(Walk of Life)’를 제작하고 있다. 부시비는 앞으로 강연과 책 집필 등으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다만 새로운 장거리 원정에 나설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는 “28년이면 충분하다”며 “이제 등산화는 걸어둘 것”이라고 말했다.



배재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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