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GOAT’를 넘어 한국 여성 최고 스포츠 선수 김연아(가운데), 박세리(오른쪽)와 비견되는 안세영. [신화=연합뉴스, 연합뉴스, 중앙포토]
지난주 세계배드민턴연맹(BWF) 프랑스오픈에서 시즌 10번째 우승과 50연승을 확정 짓는 순간, 안세영은 열 손가락으로 왕관을 만들어 머리 위에 얹는 세리머니를 했다. 시즌 승률 98.5%(66승1패). 배드민턴 코트에서 비현실적인 숫자를 써 내려간 그는 앞서 아시안게임 2연패 직후 “오늘은 GOAT(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라는 말을 즐겨보겠다”고 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사커라인)에는 ‘대한민국 여자 스포츠 역사상 최고 GOAT는 누구인가’라는 화두와 함께 박세리(골프), 김연아(피겨스케이팅), 김연경(배구), 이상화(스피드스케이팅), 장미란(역도) 그리고 안세영까지 6명의 사진이 올라왔다.
팬들의 의견은 첨예하게 갈렸다. 종목에 대한 압도적 지배력, 시대를 관통한 사회적 파급력, 또는 불가능을 깨부순 상징성. 질문의 기준에 따라 왕좌의 주인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박세리는 1998년 US오픈에서 ‘맨발의 투혼’으로 우승했다. 중앙포토
1998년 박세리는 US여자오픈 경기 도중 워터 해저드에 맨발로 들어가는 투혼을 선보이며 우승해 IMF 외환위기로 절망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이후 그 기적 같은 샷을 보고 자란 ‘세리 키즈’가 줄줄이 탄생했다.
장미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 326㎏를 들어 올리며 금메달을 땄다. ‘약물의 시대’로 일컬어진 당시에 경쟁자들이 저지른 부정행위가 뒤늦게 적발돼 메달이 줄줄이 박탈되면서 그에게 붙은 ‘내추럴’이라는 별명의 가치가 더욱 빛났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장미란이 세계신기록을 드는 모습. 중앙포토
독보적인 개인 역량으로 팀 전력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린 ‘배구 여제’ 김연경, 올림픽 500m 2연패에 빛나는 ‘빙속 여제’ 이상화 역시 각자의 종목에서 거대한 족적을 남긴 영웅들이다.
그럼에도 ‘올타임 넘버원’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는 단 한 사람으로 김연아를 먼저 떠올리는 팬들이 많다. 전용 빙상장조차 없던 불모지에서 성장해 무결점 연기를 완성한 주인공이다. 커리어 내내 시상대 밖으로 밀려나지 않는 ‘올 포디움’을 달성했고, 비인기 종목을 온 국민이 숨죽여 지켜보게 만들었다.
스물넷의 안세영은 김연아가 이룩한 불멸의 영역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돌진한다. 코트 위 지배력과 파괴력은 2011년 전성기 시절 리오넬 메시를 연상시킨다.
포효하는 안세영. AP=연합뉴스
한준희 해설위원은 “한국인이 전 세계와 한 시대를 완벽하게 석권한 사례는 보기 드물다. 안세영은 전성기 시절 이창호 9단의 승률을 능가하는 인상”이라고 짚었다. 만약 안세영이 현재 흐름을 이어 2028년 LA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추가한다면, ‘역대 최고’ 경쟁 구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지 모른다.
체육철학자 김정효 서울대 연구교수는 “영국 BBC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스포츠 선수로 복싱 무하마드 알리를 선정하며 제시한 판단 기준은 ‘인류에게 주는 영감(inspiration)’이었다”면서 “단일 종목을 1대1로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다. 안세영과 박세리도 김연아만큼 뛰어났다. 승리와 기록 이외에 우리가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판단 기준은 ‘그 선수가 우리에게 무얼 전해주었는가’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IMF 금융위기 때 박세리가 우리에게 준 것은 희망이었다. 김연아는 전혀 새로운 스포츠의 아름다움을 자긍심으로 가져다줬다”면서 “우리 시대 스포츠 GOAT의 정답은 선수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이야기의 울림에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