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리 사셨나요[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중앙일보

2026.11.03 07:12 2026.11.03 12:25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으로 41년간 활동하며 국내외 소외 아동을 위한 나눔에 앞장선 고 최불암 배우.   사진은 생전 고령에도 아프리카를 찾아 현지 어린이들을 돌보는 최불암 배우의 모습. 연합뉴스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으로 41년간 활동하며 국내외 소외 아동을 위한 나눔에 앞장선 고 최불암 배우. 사진은 생전 고령에도 아프리카를 찾아 현지 어린이들을 돌보는 최불암 배우의 모습. 연합뉴스

‘국민 아버지’ 최불암이 엊그제 떠났다. 온화하고 푸근한, 때로는 엄격한 아버지의 상징이었다. 모든 걸 받아줄 것 같은, 힘들 때 언제든지 등을 빌려줄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장면에서는 단호하다. 김 회장(최불암 분)은 셋째 아들 금동이를 입양했는데, 금동이가 자전거를 훔친 사실이 드러난다. 김 회장 부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 고심 끝에 김 회장은 매를 들어 금동이의 종아리를 내리친다. “네가 휘지 말고 곧게 자라라는 뜻이다. 매를 평생 기억해”라고 말한다. 김 회장은 공무원인 장남 용진(김용건 분)이 청탁 유혹에 흔들릴 때 “네 손에 쥔 작은 권력이 네 것인 줄 아느냐”며 엄하게 꾸짖는다. 청렴을 강조한다.

국민 아버지 최불암 푸근·엄격
요새는 아버지 상이 달라져
친구처럼 잘 소통해 주길 기대
가족 위한 무한 헌신은 여전
요즘 아버지 상(像·모습)은 어떨까. 2005년 가족실태조사에서는 ‘집안 큰일은 남자가 결정하는 게 당연하다’에 주장에 동의한 답변이 45%였다. 그렇지 않다(26.6%)는 의견보다 훨씬 높았다. 202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가족 기능, 가족 내 성역할 가치관 및 성평등 정도에 대한 인식』)는 좀 다르다. ‘가정의 의사 결정권을 주로 남성이 가져야 한다’라는 항목에 대해 77.7%가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답했다. ‘경제적 부양 책임자=주로 남성’이라는 항목에도 75.4%가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기댈 대상=아버지’ 응답 적어
2023년 가족실태조사를 보면 아버지는 쪼그라진다. ‘가장 의지가 되는 사람’으로 아버지를 꼽은 비율이 5.1%다. 어머니(22.3%)보다 훨씬 낮다. 아버지로 꼽은 사람이 딸(2.4%)보다 아들(7.8%)이 다소 높은 게 아버지에게 위안이 될까.

김 회장의 아버지 상 중 푸근함은 여전히 살아있지만, 엄격함은 빛이 바랜 것 같다. 20·30대에게 바람직한 아버지 상이 어떠한지 물어봤다. 회사원 A(32)는 “엄격한 면보다 자상한 사람”이라고 했다. 17세 고교생은 “친구처럼 같이 재밌게 놀아주는 아버지”라고 답했다. B(31)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판단 기준이 되어주는 등대 같은 사람”이라고 답했다.

갓 아버지가 된 젊은 아빠는 어떨까.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해 10월 미성년 자녀를 둔 아빠 418명에게 육아 전 꿈꾼 아버지 상이 뭔지 단답형으로 물었다.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친구’. 다음으로 놀이, 함께, 다정, 소통 순으로 나왔다. 친구 같고, 매주 여행하고, 버팀목이 되고, 매일 놀아주고, 마음을 많이 읽어주고, 손잡고 산책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한다. 다만 실제로는 바빠서 주말에만 시간 내거나 잠잘 때만 아이를 보는 아빠가 많다.

자녀에 장기 준 아버지 544명
아버지 상이 달라져도 가정의 핵심 축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지난 5년간 아픈 자녀를 위해 신장 하나를 떼 준 아버지가 434명, 간의 일부를 떼 준 아버지가 110명, 조혈모세포를 준 부모가 406명에 달한다. 신장·간 이식을 받은 자녀의 11년 생존율이 75%에 달한다. 자녀가 아프면 그렇게 하지 않을 부모가 없을 것이다. 본인의 장기가 자녀에게 줄만한 상태가 아니라면 모를까.

정부가 매년 5월 어버이날을 맞아 장한어버이를 시상한다. 전국 지자체 등에서 추천을 받아 선정한다. 올해 국민포장을 받은 김영안(57·전남 해남)씨. 그는 지체장애인이다. 아내는 지적장애가 있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87)를 26년 지극정성으로 모셨고, 아내와 1남 2녀 자녀를 돌보며 가족을 책임졌다. 마을 이장이 추천했다. 이장은 “한결같은 정성으로 어머니를 모셨다”고 언론에 말했다. 김씨의 딸(17)도 아버지를 닮아 모범소녀상을 받았다고 한다.

노인 27%, 자녀 경제 지원
요새 아버지 노릇을 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노인실태조사(2023년)에 따르면 같이 살지 않는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사람이 26.9%에 달한다. 동거 자녀에게 지원하는 노인은 36.3%이다. 자녀의 취업이 힘들어지면서 아버지의 부양 책임 기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재작년 5~7월 ‘아버지’ 특별전시회를 열었다. 100여명이 참여해 사진·이미지와 사연을 냈다. 어떤 딸은 아버지의 모자를 냈다. 아버지가 항암치료를 받느라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해졌고, 딸 결혼식에서 그걸 감추려고 모자를 썼다고 한다. 그 모자에는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하기 위해 여러 날 힘겹게 걷기 연습을 했던 아버지의 사랑이 담겼다.

비가 오면 고추장떡이나 수제비를 해주던 아버지, 그때 사용한 레시피 수첩을 보며 아버지를 그리는 자녀도 있다. 군대 간 아들을 그리는 아버지의 절절한 편지, 해외 건설 현장에서 아버지가 보낸 자녀 생일 축하 전보 등이 심금을 울렸다.

일상 멈추고 아버지 생각을
아버지를 주제로 한 대표곡이 싸이의 ‘아버지’이다. 싸이는 대학축제 등에서 이 노래를 열창하고 관객은 이 대목에서 떼창한다.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어찌 그렇게 사셨나요/더 이상 쓸쓸해하지 마요/이젠 나와 같이 가요/당신을 따라갈래요’ 싸이는 2022년 5월 한국외국어대 대동제에서 이 노래를 부르기 전 관객에게 아버지를 생각하는 2초간 함성 발사를 유도했다.

푸근하지 않아도, 너무 엄격하고 과묵해도, 친구 같지 않아도 아버지는 영원한 아버지이다. 너무 앞만 보고 살아온, 새끼들 사진 보며 한 푼이라도 더 벌던 아버지다. 이 순간 잠깐 일상을 멈추고 아버지를 생각하며 속으로 함성을 질러보면 어떨지.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