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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지도자로서 위엄·신비 못 갖췄다”

중앙일보

2026.11.03 07:18 2026.11.0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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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

이재명 대통령이 그 어렵다는 걸 해내고 있다. ‘폭풍’ 소셜미디어(SNS) 사용을 두고 보수·진보 언론으로부터 한목소리로 비판을 받는다는 점이다. SNS를 ‘목숨줄’ ‘숨구멍’으로 여기는 이 대통령에게 SNS를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지나친 사용은 줄이라는 조언이다. 동의한다.


논거는 이렇다. 대통령이 주요 현안이나 자신에 대한 비판에 일일이 대응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이어지는데, 청와대·부처가 판단을 미루고 대통령의 의중에 맞춰 움직일 뿐이란 것이다. 대통령마저 책임을 얼버무리면(실제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를 두고 “누군가는 결정했겠죠”라고 했고 전국 농지조사를 두고 “장관의 건의였다”고 했다) 더한 혼란을 낳을 뿐이란 점도 있다. 역시 동의한다.

과잉 SNS로 대통령 말값 가벼워져
“제일 앞서 화·짜증나 있다” 인상도
대통령에겐 위신도, 신비감도 필요

덜 언급되는 문제도 있다. 우선 ‘말값’이다. 이 대통령의 최근 말은 과거의 말과 연장선에 있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최근 “외국인 노동자는 (임금을) 전부 송금해 국가 경제에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인권 감각이 논란이 됐는데, 올 3월 자신이 오래전 변호했던 필리핀 노동자를 만난 자리에선 “어떤 시기, 어떤 곳에서 일하든 똑같은 권리와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보편적 권리의 원칙이 이때 저때 달라질 수 있나. 그는 또 자신의 다문화 관련 발언을 비판하는 진보 진영을 향해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기준을 남에게만 강요하는 내로남불의 태도”라고 했는데, 국무회의에선 토론을 장려하며 “좋은 친구는 쓴소리를 해주는 친구”라고도 했다. 비판과 쓴소리는 어떻게 다른가.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때론 사실에 부합하지 않거나(외국인 노동자의 전액 송금 주장), 억지스러운 대응도 있다. 중수청의 국무회의 참석에 대한 비판을 ‘지휘감독을 포기하란 말이냐’로 바꿔 반박한 게 일례다. 잦은 해외 순방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돼지 눈에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 부처만 보인다”고 했다가 논란이 되자 보인 반응도 기이했다. 이 대통령은 이성계와 무학대사 간의 ‘돈안지유돈 불안지유불(豚眼只有豚 佛眼只有佛)’을 쓴 것이라며 “똑같은 말을 한글로 표현하니 격이 떨어진다고 한다"고 했다. 600년 전 일화에서야 오랜 벗 사이의 격의 없는 농담일 순 있으나 현대어에선 주로 상대방을 ‘돼지’로 비난하는 뉘앙스로 쓰인다는 걸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자와 한글의 문제인 양 했다.

이런 식이라면 지금의 말이 미래에도 유효할 것이란 확신을 주기 어렵다. 대통령학의 석학인 리처드 노이슈타트는 대통령 권력의 본질은 ‘설득하는 힘’이라고 했다. 공적 권한 외에 평판과 공적 위신도 권력의 중요한 원천이란 것이다. 대통령의 말값이 가벼워지면 위신도 유지되기 어렵다.

여기까지가 위신의 위기라면 또 다른 건 신비감의 위기다. 이 대통령은 새벽 시간대에도 X 활동이 감지된다. 하루 10개 글을 올린 날도 있다. 혹여 온라인 논쟁에 몰입한 여느 SNS 이용자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나.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은 “(대통령이)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라 제일 앞서서 화가 있고 짜증나 있는 모습”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소탈해 보이는 건 좋지만 사소한 논쟁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필부처럼 비쳐선 곤란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폭풍 X’ 그래픽 이미지.

이재명 대통령의 ‘폭풍 X’ 그래픽 이미지.

이쯤에서 대단히 고통스러운 임기 말을 보낸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는 게 좋겠다. 퇴임을 두 달 앞둔 2007년 12월 출입기자단 송년 만찬 모임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제왕의 위엄에 어울리는 언어가 있는데 그걸 갖추려고 노력은 했는데…. 지도자의 위엄과 카리스마, 신비를 갖추지 않은 것 같다. 사리로 설득하려 했다. 위엄으로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두 가지 총화가 위엄이 없는 대통령이 됐다.” 그는 달리 선택했지만 위엄·카리스마·신비가 대통령직의 요체인 걸 의식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분명 이 대통령의 과도하고 기이한 SNS 사용은 대통령직에 필요한 공적 위신과 신비감을 훼손하고 있다.



고정애([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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