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국기 태권도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서 북한에 선수를 빼앗길 처지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2일 북한이 신청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무술-태권도’에 ‘등재 권고’가 예상된다며, 남북 공동 등재에 힘썼으나 현 시점에서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태권도를 세계에 보급한 종주국이면서 정작 인류문화유산 등재는 북한에 밀린 일이 그저 청장이 SNS에 “안타깝게 생각한다” 정도로 표명할 일인가.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안일한 모습이다.
이번 정부만의 책임은 아니다. 북한은 2024년 3월 단독 등재를 신청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 들어 올해 3월 말에야 단독 등재 신청서를 냈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2016년 등재를 추진했으나 결실을 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8년 남북 태권도 단체가 공동 등재에 합의했으나 신청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신청에 앞서 필요하다고 여겨진 태권도의 국가무형문화유산 지정이 역사성과 고유성에 대한 학계의 논란으로 보류됐기 때문이다. 그 사이 남북관계는 경색됐다.
이재명 대통령과 레젭 타입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육군 태권도 시범대의 특별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제는 우리가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화와 해외 보급에 도취해 문화유산으로서의 정체성을 정리하고 세계에 공식화하는 데 소홀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2018년 씨름의 남북 공동 등재 성공에 기대어 태권도도 같은 방식으로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북한이 2023년 말 ‘적대적 두 국가’를 천명한 후 단독 등재 신청까지 했는데도 독자 등재에 신속히 나서지 않고 방관했다. 전략적 판단 부재가 아닐 수 없다.
유네스코 선등재가 독점권을 뜻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아리랑은 한국이 2012년 먼저 등재한 뒤, 북한이 2014년 별도 등재했다. 한국의 태권도도 별도 등재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한심한 문화외교가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최종 등재 여부는 12월 중국 샤먼 유네스코 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앞으로 정부는 외교력을 총동원해 한국 태권도의 역사와 전승 실태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유네스코 등재의 남은 가능성을 치밀하게 두드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