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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지극히 가벼운, 존재의 무게

Chicago

2026.11.03 12:28 2026.11.0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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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

이기희

인생은 널뛰기와 돌려차기다. 높이 올라갔다고 흥분하면 곤두박질 친다. 나 혼자 힘자랑질 하다가 상대가 꺼꾸러지면 게임 끝이다. 인생의 공은 시도 때도 없이 어느 쪽에서 날아올지 모른다. 난데없이 돌려차기로 날아오는 공도 막아내야 한다. 순순히 골대를 향해 걸어오는 공은 없다.  
 
아침에 체중 달 때는 잠옷 벗고 거의 알몸(?)으로 잰다. 체중이 불면 몇 안 되는 숫자가 기분을 잡친다. 살아있다는 것은 깃털처럼 가벼운 존재의 무게를 재는 일이다. 후 불면 날아가는 생의 무게에 눌려 힘들게 산다.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빼앗기고 쓸데없는 일에 골몰하며 별 볼일 없는 일에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 작은 일에 흥분하고 눈곱 만한 일에 다투고 얼굴 붉히면 산다. 나이 들어 상황 판단이 안되면 번데기 주름잡기는 지속된다.  
 
수비가 없는 골대 앞에서 공을 찰까 말까 망설이고 돌아서서 용기가 없음을 후회한다. 어차피 인생은 선택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죽을지 살아 남을지를 고민하지만, 안 죽으면 살아남는다. 죽는 걸 서둘러 걱정할 필요 없다. 운명의 양자 택일은 때가 되면 온다. 존재하는 것들은 무겁고 가볍다. 가벼운 자들의 널뛰기고, 무거운 자들의 돌려 까기다.  
 
밀란 쿤데라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니체의 영원회귀에서 출발해, 채찍질 당하는 말을 껴안고 우는 니체를 애도하며 끝을 맺는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 해도 지금의 선택을 반복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생은 가벼움과 무거움 중 어느 쪽이 좋은 것일까?  
 
가볍고 즐겁게 사는 것과 무겁고 의미 있게 사는 것으로 양분할 수 있을 것인가? 작품 속 토마시는 연애만큼은 우연과 자유를 추구한다. 어떤 책임이나 구속도 거부한다.  
 
육체와 영혼은 별개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한다. 테레자는 지성을 열망하고 이데아를 지향한다. 사랑에는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러움도 공존한다고 믿는다.  
 
토마시의 바람기는 테레자의 존재 자체를 흔드는 무거운 고통이 된다. 테레자의 육체적•정신적 중력은 토마시를 억압하고 둘의 결합은 끊임없는 존재론적 고통이 된다.  
 
‘인생은 한 번 살면 그것으로 끝이다. 어느 것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비교할 다른 인생이 없기 때문이다’ 작품 속 명 대사다.  
 
밀란 쿤데라는 행복은 거대한 이벤트가 아니라 소소한 일상의 편린이라고 서술한다. 소설 후반부에서 토마시와 테레자는 화려한 경력을 내려 놓고 시골로 내려가 같은 저녁 같은 식탁이 되풀이되는 하루를 산다. ‘개는 결코 낙원에서 추방된 적이 없다.’ 행복은 새로운 낙원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작은 일상의 형태이고, 같은 커피 같은 산책길, 같은 사람의 얼굴에 기뻐하는 소소한 만남이다. 직선을 달려온 인생 끝자락에서 행복을 느끼는 방법은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는 일이다.  
 
밀란 쿤데라는 인간 실존의 본질을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담아 육체와 영혼, 삶의 의미와 무의미를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유려한 문체로 생생하게 펼친다.
 
사는 것이 무겁고 힘들어도 날개를 퍼덕이면 고추잠자리처럼 가볍게 날아오를 수 있다. 사랑이 바람처럼 어깨를 스쳐가도 슬퍼하며 붙잡을 생각 하지 않기를.
 
세월이 흘러도 풍경은 남고 기억은 강물 따라 흐른다. 사는 것이 두려운 것은 헛된 집착 때문이다. 명예 돈 물욕 사랑에 대한 그릇된 신봉(信奉)이다. 사랑이 집착이 되면 함께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진다.
 
존재는 지극히 가벼운 만남을 위해 밤안개로 뒤뜰의 무릎을 적신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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