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오피스텔과 원룸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24시간 범죄수익금을 세탁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범행에 동원된 대포통장만 260여개, 세탁 금액은 2700억원에 이른다.
울산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는 4일 전자금융거래법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3개의 자금세탁 조직 조직원과 대포통장 공급책·명의자 등 157명을 검거하고, 이 중 30대 A씨 등 49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울산경찰청 광수대가 자금세탁 조직을 검거해 입수한 증거물. 사진 울산경찰청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4년 5월부터 지난 8월까지 대포통장 260여개를 이용해 불법 도박·보이스피싱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금 2700억원 상당을 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범죄자들 사이에서 ‘반가상집’으로 불리는 전문 자금세탁 조직들을 운영하며 수수료를 받고 불법자금을 세탁했다. ‘반가상집’은 ‘완전하지 않은 가상계좌’를 뜻하는 은어라고 한다.
범죄조직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연결돼 자금 세탁을 의뢰받았다. 조직원 대부분은 SNS나 지인 등을 통해 모집한 20~30대였다.
조직들은 계좌 모집·공급팀과 자금세탁팀으로 역할을 나눴다. 자금세탁팀은 울산·대구·경북 등의 오피스텔과 원룸을 빌려 사무실을 차리고, 24시간 교대 근무했다. 조직의 관리책들은 계좌 관리와 자금 이체를 총괄했다. 조직원들은 불도저 같은 별명이나 가명을 쓰고 텔레그램 등 보안성이 높은 메신저로만 주로 연락했다. 사무실도 단기간 임차하는 등 수사기관의 감시망을 피해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울산경찰청 광수대가 자금세탁 조직을 검거하고 입수한 증거물. 계좌 이체 관련 화면이 스마트폰에 남아있다. 사진 울산경찰청
자금세탁에는 여러 단계의 대포통장이 동원됐다. 도박자금이나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첫 계좌인 ‘앞장’에 입금되면 지급정지를 피하기 위해 두 번째 계좌인 ‘중장’으로 즉시 옮겼다. 이후 세 번째 계좌인 ‘뒷장’에서 돈을 쪼개 송금하거나 환전해 자금 흐름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여러 계좌를 거쳐 추적을 어렵게 만든 돈은 수수료를 뺀 뒤 범죄조직에 전달됐다. 수수료는 세탁액의 0.4~1%로, 경찰은 이들이 수억원대 부당이득을 얻은 것으로 파악했다. 이렇게 번 돈은 조직별로 간부급 조직원들이 일정 비율로 나눠 갖고, 하위 조직원들에게는 월급으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포통장 공급 수법도 다양했다. 유령법인을 설립해 계좌를 개설하거나 이체 아르바이트를 가장해 명의자를 모집했다. 숙박시설에서 명의자를 감시하며 계좌를 이용하고, 명의자를 해외로 출국시켜 사기 조직에 넘기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포통장은 직접 모집한 명의자에게서 확보하거나 전문 공급조직으로부터 사들였다. 경찰은 계좌당 100만원에서 수천만원에 거래된 것으로 파악했다. 거액을 챙긴 일부 간부급 조직원들은 고가 차량을 구매하며 생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범죄수익 중 4억3000만원 상당에 대해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 조치했다
울산경찰청 광수대가 찾은 자금세탁 조직의 사무실. 사진 울산경찰청
박신종 울산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장은 “통장이나 휴대전화를 타인에게 양도·대여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자금세탁과 대포통장 공급 범죄를 끝까지 추적하고, 범죄수익을 철저히 환수해 범행 의지를 차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