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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쓸모없는 예술의 쓸모

Los Angeles

2026.11.03 17:32 2026.11.0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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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최 / 한미무용연합회회장 진 발레스쿨 원장

진 최 / 한미무용연합회회장 진 발레스쿨 원장

LA 아만슨 극장에서 열린 ‘제롬 로빈스 발레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로빈스는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와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연출과 안무를 맡았으며, 조지 발란신과 함께 뉴욕시티발레단을 이끈 거장이다. 로빈스의 발레 작품은 직접 볼 기회가 없어 늘 궁금했다.뮤지컬과 발레를 넘나든 그의 안무 세계를 이번 무대에서 만나보고 싶었다.
 
여러 발레단의 수석무용수들이 함께했다. 한 예술가의 생애가 끝난 뒤에도 그의 춤이 다른 이들의 몸을 통해 살아 숨 쉰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첫 작품 ‘인 더 나이트(In the Night)’에서는 쇼팽의 녹턴이 피아노 실황 연주로 흐르는 가운데 세 쌍의 무용수가 춤을 추었다. 그들이 몸으로 그려내는 사랑에 내가 지나온 시간과 감정이 겹쳐지면서 눈물이 났다. 어느새 나도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춤추고 있었다.  
 
두 번째 ‘어 스위트 오브 댄시스(A Suite of Dances)’에서는 바리시니코프를 위해 만들어진 춤을 타일러 펙이 추었다. 이 작품을 여성 최초로 춘 펙은 원래의 안무를 지키면서도 자신만의 빛깔을 더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음악과 한 사람의 몸이 나누는 대화였다. 마지막 ‘댄시스 앳 어 개더링(Dances at a Gathering)’에서는 무용수들이 만나고 흩어지며 무대를 채웠다.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시간의 흐름마저 잊었다. 예술에 압도되어 몸까지 반응한다는 ‘스탕달 신드롬’이 떠올랐다. 숨이 막히도록 벅찬 순간, 내가 살아서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거대한 장치나 현란한 영상 없이 피아노와 첼로, 사람의 몸만으로 충분했다. 오직 무용수의 고도로 연마된 테크닉과 섬세한 표현력만으로 승부를 거는 무대였다. 신고전주의 발레의 절제미와 미니멀리즘의 단순함이 떠올랐다. 덜어낼수록 작은 움직임과 잠깐의 멈춤이 깊이 다가왔다. 특히 마지막에 무용수들이 오른쪽과 중앙, 왼쪽으로 천천히 객석을 바라보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저 우리를 바라볼 뿐인데 마음이 얼어붙는 듯했다. 연주자가 소리를 내지 않을 때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듯, 그 정적 속에서 무대의 숨과 객석의 기다림이 또렷해졌다. 나도 공연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오래전 독서 모임에서 읽었던 장자의 나무도 다시 떠올랐다. 쓸모없다고 여겨진 나무는 바로 그 이유로 베이지 않고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무용지용', 쓸모없음의 쓸모였다. 세상이 매기는 쓸모와 존재의 가치는 같지 않았다. 아름다움 앞에 머무는 시간도 당장의 성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 안의 무언가를 살리고 있었다. 아름다움 앞에 잠시 머문 뒤, 다시 가르치고 만들며 살아갈 마음을 얻었다. 세상의 쓸모로 다 헤아릴 수 없는 그 시간이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65세 이상은 잔여석이 있을 경우 현장에서 25달러에 티켓을 살 수 있다. 

진 최 / 한미무용연합회회장·진 발레스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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