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 후 국가 관리·감독의 사각지대 방치 심각 정서·환경적 차이에 소외감 및 심리적 단절도
인생의 후반전을 맞아 누구나 평온하고 안락한 노후를 꿈꾼다. 매일 아침 전문가가 식단을 고민해 차려주는 밥상, 단지 내에서 해결되는 의료 서비스와 여가 생활, 그리고 외로움을 달래줄 이웃들. 미디어와 분양 광고가 그려내는 실버타운의 모습은 마치 고단한 삶의 끝에 마주하는 지상낙원과 같다. 그러나 화려한 유토피아의 이면에는 과연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을까.
최근 한국의 한 방송사는 우리가 막연히 동경해 온 실버타운의 민낯을 가감 없이 파헤쳤다. 방송이 고발한 현장은 ‘노인들의 천국’이 아니라, 제도의 허점 속에서 방치된 황혼의 유배지와 다르지 않았다.
방송이 조명한 경기도 성남의 한 분양형 실버타운은 상위 0.1%를 겨냥한 초호화 유럽풍 외관으로 주목받았던 곳이다. 평당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막대한 돈을 지불하고 입주했으나, 현재 이곳의 커뮤니티 시설과 공용 공간은 파산 사태 이후 9년째 폐쇄된 채 방치되어 있다.
입주민들은 비상벨을 눌러도 응답이 없고, 곰팡이와 습기로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폐허 속에서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약속했던 의료 시설과 사우나, 식당 서비스는 사라졌고, 일반 아파트와 다름없는 곳에서 매달 수백만 원의 관리비만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구조적인 모순에 있다. 실버타운은 명백히 노인복지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초기 분양 이후 운영과 관리는 민간 업체의 자율에만 맡겨져 있다. 국가의 관리·감독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입주민들은 재산권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매매조차 여의치 않아 탈출구 없는 고통 속에 갇혀 있다.
이러한 한국 실버타운의 허상과 제도의 미비함은, 오랜 세월 미국 등 해외에서 터전을 잡고 살다가 은퇴 후 ‘고국에서의 안락한 노후’를 꿈꾸며 귀국한 한인 은퇴자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현실로 다가온다.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겪는 문화적·환경적 충격은 절대 작지 않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살아온 자녀들과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살게 되면서 깊은 고립감과 심리적 단절을 겪게 된다.
또한 “몸은 고국에 왔지만, 이미 이방인이 되어 버렸다”는 호소처럼, 오랜 세월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에 동화되었던 이들에게 한국 특유의 촘촘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대인관계 양식, 세대 간 정서적 괴리, 그리고 낯선 행정 시스템은 깊은 소외감을 안겨준다.
한국의 우수한 의료 기술만 믿고 귀국했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미국에서 메디케어나 사보험 체계에 익숙했던 이들에게 민간 중심의 상업적 실버타운이 안기는 배신감은 더욱 크다.
한국에 귀국하여 은퇴 생활을 하는 것은 각자의 결정이자 선택이다. 하지만 고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정서적 갈증 때문에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귀국을 시도하다 씁쓸한 현실을 마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평생을 헌신한 해외 동포들이 고국을 찾았을 때 낯선 이방인처럼 상처받지 않고 따뜻한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제도적 대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하루빨리 미국 내에서도 한인 정서와 문화를 반영한 우수하고 체계적인 실버타운들이 많이 만들어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