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등록 안했어도 가능 66개 항목들 앞에선 멈칫 분홍 봉투에 담긴 임시표 사후 검증 거쳐 집계 예정
중간선거 당일인 3일 미주중앙일보 사옥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현장 등록을 하고 있다. 아래는 투표를 마친 유권자에게 발급된 임시투표 확인증과 ‘투표 완료(I Voted)’ 스티커. 이정범·김여진 기자
LA로 이주한 지 이제 4개월. 시민권자이지만 그동안 유권자 등록을 한 적은 없었다. 거주지가 기재된 신분증도 아직 발급받지 못한 상태다. 손에 쥔 것은 미국정부가 발급해준 여권이 전부였다.
중간선거 당일인 3일, LA에서 첫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미주중앙일보 사옥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았다.
한국에서는 여러 차례 투표에 참여해봤지만, 이곳에서는 처음이었다. 신분증이라고는 여권뿐이라 내심 걱정했으나 투표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가주의 ‘당일 유권자 등록(Same-Day Voter Registration)’ 제도 덕분이었다.
투표소 직원은 당일 등록한 유권자는 임시투표 방식으로 한 표를 행사한다고 설명했다. 선거관리 당국이 투표 후 등록 정보와 자격, 중복 투표 여부 등을 확인해 문제가 없으면 개표에 포함하는 방식이다.
행정 오류 등으로 유권자가 투표권을 상실하는 사태를 방지하는 동시에 중복 투표를 막기 위한 장치다.
투표소 직원은 “사전 유권자 등록을 하지 않은 경우뿐만 아니라, 행정 착오 등으로 선거인명부에서 이름이 확인되지 않아 임시투표를 진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안내에 따라 임시투표자용 분홍색 봉투를 전달받았다. 봉투 겉면에 시민권 보유 여부, 18세 이상 해당 여부에 체크한 뒤 이름, 생년월일, 거주지 주소, 출생지, 사회보장번호(SSN) 끝 4자리 등을 기재하고 서명했다.
가주에서는 일반적으로 투표할 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지 않는다. 일부 신규 유권자에게는 예외적으로 신분 확인을 요구할 수 있지만, 이날은 별도의 신분증이나 거주 증빙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도 됐다.
투표소 직원은 봉투에 ‘신규 유권자, 신분증 없음(New Voter, No ID)’이라고 표기한 뒤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지정된 투표소를 찾아 반드시 신분증을 제시해야 했던 한국의 투표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별다른 사전 준비 없이 현장에서 당일 등록을 마치고 투표할 수 있다는 점은 편리했다.
가주 총무처에 따르면 당일 등록자의 투표용지는 선거관리 당국이 유권자 자격과 중복 투표 여부 등을 확인한 뒤 집계한다. 자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해당 선거구에 투표권이 없는 경우에는 투표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가 제외될 수 있다.
전자기표기 앞에 서자 모니터에 떠오른 항목은 무려 66개. 미리 내용을 숙지하고 오지 않는다면 모든 항목에 기표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투표는 디지털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진행됐다. 발의안 자체는 다소 복잡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화면에는 각 항목에 대한 요약 설명과 함께 지지·반대 단체의 명단 등 유권자의 판단을 돕는 참고 정보가 제공됐다. 후보자의 공약 이행 여부를 사후에 지켜봐야 하는 한국과 달리, 구체적인 정책 발의안에 유권자가 직접 찬반을 행사한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날 투표소 현장에는 사전에 준비해 온 메모를 들여다보며 신중하게 화면을 터치하는 유권자들의 모습도 다수 눈에 띄었다.
기표 절차 역시 직관적이고 편리했다. 화면에서 선택을 마치자 기표 내용이 찍힌 종이 투표용지가 즉석에서 인쇄됐다. 기표 도장의 잉크가 번져 무효표가 될까 봐 투표지를 입으로 불어 말리던 한국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인쇄된 투표용지를 다시 분홍색 봉투에 넣고 제출했다.
임시투표를 마치자 직원이 봉투에서 확인증을 떼어 건넸다. 확인증에는 선거일로부터 30일이 지난 뒤 자신의 투표가 유효표로 집계됐는지 전화로 확인하라는 안내가 적혀 있었다.
투표소를 나서며 지역 사회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LA 시민으로서 첫발을 내딛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물론 내가 던진 한 표가 유효표로 최종 집계될지는 시간이 더 흘러야 알 수 있다는 불확실성도 공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