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흑인 정치인들이 주지사 선거의 새 역사를 썼다. 조지아에서는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주지사가, 플로리다에서는 주 역사상 첫 흑인 주지사가 탄생했다. 뉴멕시코에서는 미국 최초의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 주지사가 탄생했다. 공화당의 오랜 텃밭인 텍사스와 아이오와에서도 민주당이 주지사직을 탈환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미국 조지아주 민주당 주지사 후보인 키샤 랜스 보텀스가 3일(현지시간) 애틀랜타에서 열린 선거 당일 밤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 공영방송 NPR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키샤 랜스 보텀스(56) 전 애틀랜타 시장은 조지아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억만장자 의료기업 경영인 릭 잭슨을 꺾고 당선됐다. 미국에서 흑인 여성이 주지사에 당선된 것은 처음이다. 민주당이 조지아 주지사직을 되찾은 것도 24년 만이다.
조지아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대선에서 패배했다가 2024년 탈환한 대표적인 경합주다. 연방 상원의원 2명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지만, 주지사와 주의회는 공화당이 장악해 왔다. 지난해 9월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당국이 조지아주 브라이언카운티의 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300여 명을 포함한 475명을 체포한 곳이기도 하다.
미국 조지아주 민주당 주지사 후보인 키샤 랜스 보텀스가 3일(현지시간) 애틀랜타에서 열린 선거 당일 밤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보텀스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반감을 공략하며 저소득층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 전면 확대, 식료품 판매세 폐지 허용, 공립학교 교사 소득세 면제 등을 공약했다. 2018~2022년 애틀랜타 시장 재임 당시 치안 악화와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논란이 약점으로 꼽혔지만, 상대 후보가 트럼프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을 부각해 승리했다. 다만 주의회에서 공화당의 영향력이 여전해 핵심 공약 추진에는 난항이 예상된다.
플로리다에서는 트럼프의 측근인 공화당 소속 바이런 도널즈(48) 연방 하원의원이 민주당 데이비드 졸리 후보를 꺾고 주 역사상 첫 흑인 주지사에 당선됐다. AP통신이 당선을 확정할 당시 득표율 격차는 2%포인트 미만이었다. 공화당은 약 30년간 이어온 주지사직 장기 집권을 유지하게 됐다.
미국 플로리다주 공화당 주지사 후보인 바이런 도널즈 연방 하원의원이 3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할리우드에서 열린 선거 당일 밤 행사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즈는 트럼프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선거운동 기간 1억3000만 달러(약 1800억원) 이상을 모금했다. 본선 TV토론에는 한 차례도 참여하지 않았다. 선거 막판에는 민주당 측 공격 광고가 흑인 남성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등 인종 문제도 쟁점이 됐다.
흑인 정치인들의 약진과 함께 공화당 텃밭에서도 이변이 이어졌다. 텍사스 주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 지나 히노호사(52) 텍사스주 하원의원이 4선에 도전한 그레그 애벗 현 주지사를 꺾었다. 텍사스에서 민주당 주지사가 탄생한 것은 1990년 앤 리처즈 전 주지사 이후 36년 만이다. 라틴계인 히노호사는 노동·민권 전문 변호사 출신으로 2017년부터 주의회에서 활동했다. 트럼프의 확고한 지지자인 애벗에 비해 인지도가 낮았지만,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과 부패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며 지지를 넓혔다.
미국 아이오와주 민주당 주지사 후보인 롭 샌드가 3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열린 선거 당일 밤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이오와에서도 민주당 소속 롭 샌드(44) 주 감사관이 공화당 잭 란 후보를 꺾고 16년 만에 주지사직을 탈환했다. 아이오와는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서 13%포인트 넘는 격차로 승리한 공화당 강세 지역이다. 농업 비중이 높은 아이오와에서는 관세 정책과 무역전쟁에 따른 농산물 수출 불확실성, 경유·식료품 가격 상승 등이 쟁점이었다. 검사 출신인 샌드는 당파를 넘어선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양당이 민생보다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가 세 차례 대선에서 모두 승리한 오하이오에서도 공화당의 아성이 흔들렸다. 트럼프의 측근인 공화당 소속 비벡 라마스와미(41)가 민주당 에이미 액턴 후보에게 패했다. 라마스와미는 선거 막판 액턴의 모친을 동원해 딸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는 광고를 내보냈지만, 액턴이 어린 시절 계부에게 성폭력 등 학대를 당했고 모친이 이를 외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역풍을 맞았다. 트럼프가 광고를 옹호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라마스와미는 2024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 출마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정부효율부(DOGE) 공동 수장으로 지명됐던 인물이다.
미국 뉴멕시코주 민주당 주지사 후보인 뎁 할랜드가 지난달 9일(현지시간) 앨버커키의 선거운동 본부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뉴멕시코에서는 민주당 소속 뎁 할랜드(66) 전 내무장관이 공화당 그레고리 헐 후보를 꺾고 미국 최초의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 주지사에 당선됐다. 할랜드는 2018년 최초의 원주민 여성 연방 하원의원 2명 중 한 명으로 당선됐으며, 2021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미국 최초의 원주민 출신 장관으로 내무부를 이끌었다.
반면 공화당 강세 지역인 오클라호마에서는 미국 최초의 한국계 주지사에 도전한 민주당 소속 신디 먼슨(41) 후보가 공화당 마이크 마제이 후보에게 패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먼슨은 오클라호마주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 주의원이자 주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