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시간) 워싱턴 링컨 메모리얼 앞 반사연못 앞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UPI=연합뉴스
미국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모두 민주당이 탈환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결과를 받아들이고 민주당과 협력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다만 공화당과 거리를 두며 선거 패배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10시 30분쯤 미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를 갖고 “(중간선거) 결과를 전적으로 수용할 의향이 있다”며 “우리는 민주당과 협력할 것이며 협력을 고대한다. 우리는 아마도 뭔가 합의를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민주당에 축하를 전한다”며 “민주당이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치열하게 싸웠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에서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불복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텍사스주 유세를 위해 떠나기 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선거 결과를 존중하겠느냐”고 기자가 질문하자 “정직하게 치러진 선거라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이 말은 선거 결과를 불복하거나 부정선거를 주장할 수도 있단 뜻으로 해석됐다. 그는 자신이 조 바이든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던 2020년 대선에 대해서도 꾸준히 부정선거라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만 해도 갑작스럽게 이스라엘 군사원조 중단을 발표하는 등 판세를 공화당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애썼다.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원조를 놓고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부에서도 불만이 나오고 국민 여론까지 악화하자, 선거 막판 공화당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그러다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모두 공화당의 패배가 확정되자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전국적으로 나타난 민주당의 압승을 받아들이면서도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고 전했다. 또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개표 방송을 지켜보던 백악관 분위기가 어둡고(dark), 장례식장 같았다(funereal)”고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VETO(비토·거부권)’이라고 적힌 빨간 모자 사진을 별다른 설명 없이 게시했다. 사진 트루스소셜 캡처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뷰 후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VETO(비토·거부권)’이라고 적힌 빨간 모자 사진을 별다른 설명 없이 게시했다. 앞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도 “(민주당은) 정신 나간 것들을 보내올 것이고 나는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며 “그렇게 두어 달 거부권을 행사하고 나면 민주당이 연락해올 것이고, 그때 협력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선거 결과가 자신의 대통령직에 대한 심판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NYT는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지난 2년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가장 성공적인 2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에 대해선 “내가 후보로 출마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충분한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끌어내지 못해서”라고 주장했다.
NYT에 따르면 이날 백악관 당국자도 취재진에게 “후보의 자질이 중요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들보다 더 효과적으로 후보를 홍보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 유세에도 후보들의 경쟁력이 부족해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주장이다.
3일(현지시간) 미국 중간선거 당일, 워싱턴DC의 워싱턴 기념탑에서 바라본 백악관 모습. AP=연합뉴스
이란전쟁이 공화당의 선거 패배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이란전쟁이 공화당의 부진에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원인 중 하나였다”고 답했다. WSJ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이 지속적인 골칫거리가 됐다며 참모들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전쟁을 시작한 결정 자체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며 “옳은 일을 했다. 다시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쟁 자체보다는 유가 상승이 정치적으로 더 큰 부담이었다고 강조했다. 전쟁 여파로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미국 유권자들의 불만이 커졌다는 것이다.
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가든그로브에서 열린 공화당 주지사 후보 스티브 힐턴의 중간선거 개표 행사에서 지지자들이 침울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면 공화당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AP통신이 공화당 선거 캠프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이란전쟁과 유가 상승, 생활비 부담,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한 후보들의 경쟁력 등을 고려할 때 패배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환영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력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3일 밤 상원 탈환이 유력해진 뒤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인들은 변화를 선택했다”며 “이제 국민의 부담을 덜어줄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도 3일 밤 선거 개표 행사에서 하원 탈환이 유력해지자 “미국이 돌아왔다”며 승리를 자축했다. 다만 차기 하원의장으로서 트럼프 대통령과 어떻게 협력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 문제는 때가 되면 생각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