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올해 태안 마도 해역에서 수중 발굴 조사한 결과, '마도 5호선'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 난파선의 실체를 확인했다고 4일 밝혔다. 사진은 마도 5호선의 수중 발굴 조사 모습. [사진 국립해양유산연구소]
‘바닷속 경주’로 불리는 충남 태안 마도해역에서 고려시대 난파선이 잇따라 확인됐다. 그간 호남 곡창지대에서 출항한 곡물 운반선이 주를 이룬 것과 달리 처음으로 경상도 지역에서 출항한 선박도 발견됐다.
국가유산청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태안 마도해역 수중발굴 결과 지난해 징후를 확인했던 ‘마도5호선’의 실체를 밝혀낸 데 이어 인근 해역 다른 지점에서 고려난파선 ‘마도6호선’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4일 밝혔다. 6호선은 2010년 발견한 2호선의 동편 100m 지점 시굴조사에서 청자유병과 도기정병,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뭇조각), 볏섬, 화물 받침목 등 유물 20여 점이 드러나면서 탐지됐다.
연구소의 신종국 수중발굴과장은 “출토된 목간에 사주(泗州, 현 경남 사천시) 지역과 반성(班城, 현 진주시 반성면 일대) 지역에서 각각 화물을 보냈다는 내용이 있는데, 사주는 고려시대 세곡(稅穀)을 보관하던 13개 조창(漕倉) 중 하나인 통양창(通陽倉)이 있던 곳”이라면서 “함께 출토된 유물로 볼 때 12~13세기 세곡을 싣고 개경으로 향하던 배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선체가 확인되진 않았지만 경상도 지역 출항 선박으로는 처음 발견됐단 점에서 주목된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올해 태안 마도 해역에서 수중 발굴 조사한 결과, '마도 5호선'과 '마도 6호선'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 난파선의 흔적을 각각 확인했다고 4일 밝혔다. 사진은 마도 6호선 출수 목간으로 조사관이 유물 크기를 재기 위해 놓은 장치가 나란히 놓여 있다. [사진 국립해양유산연구소]
국립해양유산연구소가 마도 5호선에서 찾은 목간들. [사진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연구소는 지난해 11월 청자 다발과 선체 조각 등을 포착했던 마도5호선의 실체에도 성큼 다가섰다. 올해 본격적인 수중 발굴 조사 결과, 닻돌·원통목·밧줄 등 주요 선체 부속품을 비롯해 화물로 실린 볏섬, 선상 생활용품인 청동호 등 총 54점의 유물이 출수됐다. 특히 화물 내역이 기록된 목간 26점을 확보했다.
5호선 목간에는 ‘정묘년(丁卯年)’과 ‘정묘 12월(丁卯十二月)’이라는 화물수집 시점이 나와 있다. 연구소 측은 “함께 나온 유기물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12세기 중반~13세기 전반)와 청자의 연대 등을 감안할 때 정묘년은 1207년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화물을 수집한 음력 12월(양력 1월)은 한겨울이라 실제 항해는 이듬해인 1208년 봄에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목간에 나온 화물 발송지는 영암군 일대이고 목적지는 京(고려 수도 개경)이라고 한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올해 태안 마도 해역에서 수중 발굴 조사한 결과, '마도 5호선'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 난파선의 실체를 확인했다고 4일 밝혔다. 사진은 청동 항아리 출토 모습. [사진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연구소는 5호선의 목간 기록을 검토하며 지난 2009년 발굴된 마도1호선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1호선은 전남광주 나주, 해남, 장흥 등지에서 거둔 곡물 등을 싣고 개경으로 향하다 태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배다. 진호신 학예연구관은 “두 선박의 출수 목간에서 필적, 내용이 비슷한 점이 발견되는 등 공통점이 있다”면서 “1208년(희종 4년) 전라도 서남부 지역의 화물을 나눠 싣고 개경으로 향하던 같은 선단(船團)의 선박이 태안 마도해역에서 악천후를 만나 함께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두 선박의 파편들은 서로 250m 떨어진 데서 발견된 데다 외판(外板)의 두께·형태에서 차이가 있어 출수품들이 같은 선박에서 나왔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로써 2007년 고려청자 2만 3000여 점을 실은 채 발견된 태안선을 시작으로 국립해양유산연구소가 포착한 이 일대 고려·조선시대 난파선은 7척으로 늘었다. 2009년부터 발견된 6척은 각각 마도 1∼6호로 명명되고 있다. 태안반도와 신진도, 가의도 사이의 좁은 길목인 안흥량(安興梁)은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에서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싣고 개경이나 한양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뱃길이었지만 예부터 물길이 험해 ‘난행량’(難行梁)으로 불렸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따르면 1392년부터 1455년까지 60여 년 동안 태안 안흥량(난행량) 일대에서 침몰한 선박은 200척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연구소 측은 내년에도 5호선과 6호선에 대한 본격 탐색을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