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치러진 중간선거 기간 내내 “내가 투표용지에 있는 것처럼 생각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공화당의 기록적 대참패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이번 중간선거의 최대 변수로 꼽혔던 텍사스에서 진행한 지원 유세 연설 도중 한숨을 내쉬고 있다. AP=연합뉴스
AP통신은 집권 2년만에 연방 상·하원의 주도권을 야당에 한꺼번에 내어준 이번 선거를 ‘비난 게임(Blame Game)’으로 규정했다. 국민들은 트럼프가 강행한 관세와 전쟁으로 생활고에 직면했는데, 트럼프 일가와 측근들은 특혜와 부패 의혹 속에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여당은 오히려 앞장서서 이를 비호해 온 데 대한 준엄한 심판이 내려졌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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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90% 응답…생활고와 부패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공동으로 진행한 출구조사에서 응답자의 88%가 생활비 문제를 이번 선거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동시에 90%의 유권자들은 정부 부패를 이번 선거에서 또 다른 주요 요소라고 답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고물가에 시달리는 국민들은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데, 정부와 여당 인사들은 부패를 자행하며 오히려 배를 불리고 있다는 분노가 이번 선거를 관통한 문제의식이었다는 뜻이다. 실제 유권자의 60%는 트럼프가 국가보다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재선에 성공하며 차기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 민주당 존 오소프 상원의원(조지아)은 선거 기간 내내 “사기꾼 대통령과 그의 사기꾼 가족이 전 세계에서 수십억 달러를 챙길 동안, 여러분은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전세계가 '오일 쇼크'에 시달리고 있던 지난 9월 1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이 아일랜드에 위치한 자신의 골프장에서 열린 골프 대회에 가족들과 함께 참석해 있다.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그의 아내 베티나, 에릭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 AFP=연합뉴스
결국 유권자들의 43%가 ‘트럼프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기 위해’ 투표에 임했다. 반면 트럼프가 요청했던 대로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 위한 투표’ 비율은 16%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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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빅텐트…최전선엔 과거의 우군
특히 ‘비난 게임’ 전선의 최전선엔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앞장섰던 우군들이 자리했다. 바이든 행정부 때 발생한 인플레이션의 직격탄을 맞았던 흑인과 라틴계는 물론 복음주의 기독교인, 심지어 핵심 지지층인 ‘저학력 백인 남성’도 등을 돌렸다.
현지시간 3일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롱 공연 예술 센터(Long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에서 열린 민주당 중간선거 개표 결과 시청 행사에서 라티노들의 출구조사 결과가 표시돼 있다. AFP=연합뉴스
출구조사에서 2년 전 대선 때 40%에 달했던 20대 유권자의 공화당 지지율은 25%로 급락했다. 흑인 남성의 지지율은 21%에서 13%로 반토막이 났고, 지난 2년 내내 물의를 빚었던 이민정책을 경험한 라틴계 유권자의 지지율은 3분의 1 토막이 됐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침묵’으로 동조했다. 지난 대선 때 전체 유권자의 25% 가까이 차지했던 백인 개신교 및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투표 참여율은 17%가 됐다. 이른바 ‘샤이 트럼프’로 불리며 선거 예측을 뒤집었던 유권자들이 이번엔 아예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는 의미다.
현지시간 3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켄 팩스턴의 선거 결과 시청 파티에서, 한 참석자가 선거 결과가 발표되기 시작하자 텔레비전을 지켜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선거분석기관 ‘쿡 정치보고서’ 창립자인 찰리 쿡은 이번 선거를 기존과 다른 ‘유니콘 선거’로 규정했다. 중도층이 아니라 트럼프에 실망한 공화당 지지자들이 결과를 결정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이번 선거는 민주당에 대한 기대감에 따른 ‘블루 웨이브(Blue Wave·푸른 물결)’가 아니라 유가와 관세, 무역전쟁, 이란전쟁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농촌과 소도시 여권 지지자들이 투표를 포기하는 ‘레드 언더토우(Red Undertow·붉은 역류)’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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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수기’ 여당 심판…‘낙하산’ 줄줄이 낙선
지난 2년간 의회 양원의 다수당이었던 공화당의 참패는 행정부 견제라는 입법부의 헌법적 역할 대신 트럼프의 일방적 정책을 일방적으로 비호하고, 엡스타인 문건 공개 등의 이슈에서 눈을 감아버린 공화당에 대한 심판의 의미도 강하다.
지난 6월 9일(현지시간) 관람객들이 워싱턴에서 개최된 ‘도널드 J. 트럼프와 제프리 엡스타인 기념 열람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프리 엡스타인의 관계 연표를 살펴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공화당은 트럼프의 이란전쟁 결정은 물론 대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은 상호관세 부과 때도 트럼프의 결정을 방어하는데 급급했다. 이와 관련 이날 출구조사에서 유권자의 70%가 “의회는 대통령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강화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미국의 유권자들이 트럼프 정책에 대한 정면 비판과 함께 트럼프를 견제하지 못한 여당에 함께 심판을 가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 트럼프가 공화당의 텃밭에 ‘낙하산’처럼 후보로 투입한 측근 그룹들은 줄줄이 낙선했다. 트럼프가 직접 지명한 사우스·노스캐롤라이나의 상원의원 선거에 투입된 달린 그레이엄과 마이클 왓틀리는 패했다. ‘공화당의 심장’으로 불렸던 텍사스에서 현역 존 코닌을 내치고 측근 켄 팩스턴을 내세운 결과 역시 1994년 이후 첫 민주당 상원의원 당선으로 귀결됐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주 러벅에서 열린 중간선거 유세 현장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켄 팩스턴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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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돈·공포 전략’ 안 먹혔다
트럼프는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선거 막판 접전지에 정치 자금을 집중 투하했다. 유권자들에겐 “공화당 승리시 전 국민 5000달러 지급” 등 현금 살포 공약도 서슴지 않았다. 동시에 민주당을 향해 “미친 광신도들과 급진주의자들이 미국을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 것”이라며 이념적 공포 전략을 반복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이오와주에서 진행한 지원 유세에서 특유의 춤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트럼프를 재선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이러한 ‘돈과 공포 전략’은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로이터는 이에 대해 “유권자들은 식료품과 휘발유 가격에 훨씬 더 집중했고, 트럼프가 이 비용을 어떻게 낮출 것인지를 더 자세히 듣고 싶어했다”며 “트럼프의 공포 조장 전략은 통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실제 트럼프는 이란전쟁에 따른 물가 급등 문제가 불거지자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기 위해 치러야 할 작은 대가”로 치부하며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고, 결국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현금 살포성 공약을 남발하면서도 구체적인 재원은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