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을 앞두고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1심에 이어 2심 법원도 당선무효형을 선고했다. 지난해 5월 1일 대법원이 세운 ‘이재명 파기환송’ 판결의 법리를 주요 법리로 삼았다. 이 대통령을 겨냥했던 법리가 이번에는 국민의힘을 옥죄고 있는 꼴이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국민의힘은 20대 대선에서 보전받은 선거비용 397억원을 반환해야 한다.
서울고법 형사2-1부(재판장 백승엽)는 4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2심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의 항소를 기각하면서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 선거 후보자로서 올바른 판단 자료를 제공할 의무가 있음에도 선거 과정에서 허위사실을 공표함으로써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권을 침해했다”며 “그럼에도 윤 전 대통령은 수사부터 당심에 이르기까지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전 대통령은 20대 대선 후보 시절 크게 두 가지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21년 12월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에게 이남석 변호사를 소개한 사실이 없다”고 허위 발언한 혐의를 받는다. 2022년 1월 불교리더스포럼 출범식 인터뷰에서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당 관계자로부터 소개받았고, 김건희 여사와 함께 만난 적은 없다”는 취지로 거짓 해명한 혐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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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도 ‘5·1 이재명 파기환송’ 인용…“정치적 표현, 선거인 관점에서 해석해야”
차준홍 기자
사건의 쟁점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였다. 2심 재판부는 원심과 같이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지난해 5월 1일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윤 전 대통령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대통령의 ‘김문기 모른다’ 등 발언에 대한 2심의 무죄 판단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 10인은 “표현의 의미는 후보자 개인이나 법원이 아닌 선거인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며 정치적 표현의 자유 허용 범위를 축소했다.
윤 전 대통령 2심은 선거인의 관점에서 발언이 사실과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변호사 소개란 당사자와 변호사를 연결해 접촉할 수 있도록 하는 사실적 관점과, 법률 사건에 관해 위임 계약을 체결하도록 편의를 도모하는 법률적 관점에서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면서 “일반 선거인의 관점에서 피고인이 윤우진에게 법률적 관점뿐 아니라 사실적 관점에서도 이남석 변호사를 소개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이해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의 2012년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과 2019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의 발언을 언급하며 “피고인도 사실적 관점과 법률적 관점의 변호사 소개에 차이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2013년 김 여사가 전씨를 알게 된 이후 줄곧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윤 전 대통령 부부와 전씨가 여러 차례 만난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선거운동 과정에서 전씨를 우연히 만났고 배우자와 전씨를 만난 사실이 없다’는 의미로 유권자에게 이해되는 발언을 한 것은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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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측 “2020년 이재명 판례 따라 무죄” 주장
윤석열 전 대통령이 4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서울고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해 선고 주문을 듣고 있다. 서울고법 제공
윤 전 대통령 측은 이 대통령의 ‘친형 강제입원’ 발언에 대한 2020년 대법 전합 판례를 근거로 무죄를 주장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 TV 토론회에 후보자 신분으로 참가해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려 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발언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2020년 이 사건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판결하면서 “선거의 공정을 위하여 필요하다는 이유로 부정확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표현들 모두에 대하여 무거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면서 “토론 중 질문·답변이나 주장·반론하는 과정에서 한 표현이 선거인의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이 아닌 한, 일부 부정확 또는 다소 과장되었거나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경우에도 허위사실 공표행위로 평가하여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이 판례를 제시하며 “두 발언 모두 선거 과정의 정치적 공방 속에서 즉흥적·방어적으로 한 것이므로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한 행위로 평가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이런 식으로 허위 사실 공표를 인정하고 당선 무효라고 판단하면 선거는 왜 하느냐”고도 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윤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은 기자들과의 문답 내지 인터뷰에서 피고인이 한 발언이 문제된 것이어서 (2020년 대법 판결의) 후보자 토론회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이유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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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5·1 파기환송’ 땐 민주 “사법 쿠데타” 국힘 “정의 살아있어”
대법원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한 지난해 5월 1일 이 후보가 전국 각지에서 민심을 듣는 '골목골목 경청투어'을 시작하며 경기도 포천 중앙로에서 시민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1년 6개월 만에 같은 법리를 두고 양당의 희비가 엇갈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해 5월 1일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사법부의 명백한 선거 개입”,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 쿠데타”라며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대법원은 대한민국의 법치와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준다”며 “허위사실 유포로 유권자를 기만했던 이재명 후보에 대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윤 전 대통령 판결 2심 선고 직후 “지난 대선 때 거짓말로 국민의 선택을 농락한 선거범죄에 대한 당연한 판단”이라며 “(윤 전 대통령 발언은) 유권자의 자유로운 판단을 왜곡한 중대한 선거 범죄”라는 입장을 밝혔다. 1심 선고 다음날인 7월 28일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중지된 상황을 언급하며 “국민의힘은 야당이니까 397억원을 조속히 반환해야 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이니까 434억원 반환을 연기해 준다면 명백히 불공정한 야당 차별”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