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에서 집권 공화당의 참패가 확실시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교역 상대국을 향해 관세·투자 압박을 한층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가 합의한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도 미국 의회의 견제 강화로 사업별 추진 속도가 달라지는 등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중간선거 유세를 마무리하는 연설을 한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개표가 진행 중인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탈환했다. 한국으로선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가 최대 관심사다. 민주당은 그간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이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고 비판해 왔지만, 당장 관세 정책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의회의 별도 승인 없이도 무역법 301조와 무역확장법 232조 등 기존 법률에 근거해 관세 조치를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의회 권력 분점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입법 성과를 내기 어려워지면 관세 관련 행정부 권한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 투자 합의 이행도 더 강하게 요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상 최대 규모로 불어난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추가 투자 압박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올해 1~10월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1022억 달러로, 사상 처음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반도체가 한국의 대미 흑자를 키운 주된 요인인 만큼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확대하라는 요구가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경진 기자
개별 대미 투자사업에 미칠 영향은 전망이 엇갈린다.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의 경우, 미국 조선업 재건이 초당적 과제인 만큼 협력 자체는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미국 군함의 해외 건조 제한을 완화하는 문제는 난항을 겪을 수 있다. 민주당이 미국 내 일자리 보호와 조선업 육성, 국가안보 등을 이유로 해외 건조 허용에 신중하기 때문이다. 장 원장은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면 해외 건조 제한 완화가 어려워질 것”이라며 “마스가도 미국 내 조선소 투자나 유지·보수·정비(MRO) 쪽으로 무게가 이동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은 한국에 대한 투자 압박이 완화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성과를 부각하기 위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데다, 민주당의 의회 견제가 강화되면 환경성·경제성 등에 대한 검증이 까다로워질 수 있어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선거가 끝나면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전처럼 ‘알래스카에 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으니 이행하라’고 압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민주당도 대규모 파이프라인 건설과 LNG 개발에 대한 지역 주민 여론을 살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대미 투자사업의 추진이 지연될 경우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날 내놓은 보고서에서 “중간선거 패배 이후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은 떨어진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미 전략 투자 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무게를 둘 것”이라며 “투자 지연에 대한 보복 조치를 받지 않도록 경쟁국보다 뒤처지지 않는 일정 추진이 요구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