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 거점을 두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벌여온 조직원 2명이 5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국내로 송환되고 있다. 뉴스1
보이스피싱 피해를 보고 숨진 ‘충북 모자 사망 사건’의 피의자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한인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서울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는 모자가 당한 수법이 이들 조직 수법과 동일한 점 등을 파악해, 해당 조직을 수사 중인 부산경찰청으로 지난달 19일 사건을 이송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6월 20일 충북 음성군 한 아파트에서 50대 여성 A씨와 20대 아들 B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평소 생활고에 시달렸고, B씨는 5000만원 상당의 보이스피싱 피해까지 본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현장에서 발견된 B씨 유서에는 “보이스피싱 피해로 힘들었다”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 음성경찰서. 사진 연합뉴스TV 캡처
경찰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콜센터를 차린 보이스피싱 조직은 검사를 사칭해 B씨에게 접근했다. 이들은 B씨에게 “명의가 대포통장 등 범죄에 연루돼 조사가 필요하니 독립된 공간으로 가라”고 전화를 걸어 인근 모텔로 이동하도록 유도했다. 그런 뒤 B씨가 해당 모텔방에서 다른 사람과 접촉을 하지 못하게 고립시켰다. 또 B씨의 자산 검수가 필요하다며 수천만원의 암호화폐를 구매해 지정한 주소로 보내도록 지시했다. 이른바 ‘셀프감금’ 수법이다. 이들은 불법으로 얻은 개인정보 DB에서 20·30대 연락처를 알아내 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B씨도 이런 방식으로 이들 범행 대상에 포함됐다.
경찰은 충북 모자 사망 사건의 배후인 카자흐스탄 보이스피싱 조직이 중국인 총책과 한국인 조직원 40여 명 규모로 구성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들에게 피해를 본 국내 피해자만 100여명이고 피해액은 58억원에 달한다. 앞서 범정부 합동 ‘초국가범죄 특별대응 태스크포스(TF)’는 지난 7월 현지에서 조직원 14명을 검거했다. 중국인 총책에 대해서도 적색수배를 내리고 추적 중이다.
최근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은 캄보디아를 벗어나 제3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고 있다. 수사기관이 캄보디아 정부와 합동으로 집중 단속을 벌이면서 생긴 이른바 ‘풍선효과’다. 충북 모자 사망 사건의 배후인 카자흐스탄 조직도 2024년 10월 캄보디아를 첫 거점으로 삼은 뒤 3개월 단위로 태국·베트남 등 인접 국가를 넘나들다 올해 카자흐스탄까지 진출했다.
경찰청이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해외에서 검거된 한국인 스캠 피의자 중 캄보디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28.3%로 지난해(49.4%) 대비 크게 줄었다. 반면 베트남은 29명에서 86명으로 급증했고, 중국 역시 116명으로 늘었다. 특히 지난해 0명이었던 카자흐스탄은 올해 16명으로 급증했다.
경찰청은 ‘초국가범죄 특별대응 태스크포스(TF)’가 지난 7월 알마티에서 한국인 스캠 조직원 14명을 검거하고 국내에 체류 중이던 소속 조직원 5명 등 총 19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사진 경찰청
경찰 관계자는 “카자흐스탄은 상대적으로 비자 발급이 쉽고 중국과 인접해 육로로 도주하기 유리하다”면서 “또 한국 경찰 주재관도 없어 범행을 저지르기 더 쉬웠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카자흐스탄에 23년 거주한 교민 A씨는 “올해 한인식당 등에서 현금을 주로 사용하는 젊은 남성들이 최근 많이 보였다”며 “이들이 일부 교민에게 큰 금액의 환전을 요구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돼 우려가 컸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경찰 수사망을 피해 캄보디아가 아닌 제3국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지만 이에 대응할 치안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캄보디아에는 ‘코리아 전담반’이 구성돼 한국 경찰 13명이 파견돼 있다. 하지만 새로운 스캠 조직 거점이 되는 중앙아시아에 한국 경찰이 주재관으로 있는 곳은 우즈베키스탄 단 1곳(1명)뿐이다. 치안 인프라 확충 요구가 커지면서, 카자흐스탄 한인 단체들은 지난 8월 수사 공조 체계인 ‘코리안데스크’ 설치 청원서를 제출했다. 경찰도 외교부에 카자흐스탄 내 경찰 주재관 신설을 공식 요청한 상태다.
지난 8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브리핑룸에서 경찰청 국제공조1과장인 김병주 총경이 카자흐스탄 도피사범 릴레이 송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캄보디아 단속을 피한 조직이 흩어지면서 범죄 형태가 더욱 고도화되고 있다”며 “경찰 주재관 파견 등의 치안 인프라 확충과 범정부적 대응을 병행해 해외 피싱 조직의 거점을 뿌리 뽑아야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