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감귤 농민 김영환씨가 지난 3일 오전 극조생 감귤 수확 현장에서 버려진 감귤을 보고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최충일 기자
“애써 키운 감귤인데, 썩은 게 너무 많아 인건비도 건지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지난 3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의 한 감귤 농장. 수확철을 맞아 귤나무마다 노랗게 익은 감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나무를 가까이서 살펴보니 상황이 달랐다. 멀쩡한 감귤 사이로 껍질이 물러지고 연회색빛으로 썩어가는 열매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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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는 물론 약제값도 못 건질 판”
지난 3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의 한 농가의 극조생 감귤 농장 바닥에 버려진 무르고 부패한 감귤들 최충일 기자
농장 한쪽에는 썩어 떨어져 팔 수 없는 감귤이 버려져 있었다. 겉으로는 수확이 한창인 평범한 감귤밭이었지만, 농민에게는 썩은 감귤을 골라내는 일도 부담이었다. 이곳에서 1만6500㎡(5000평) 규모로 감귤 농사를 짓는 김영환(46)씨는 “많은 나무는 수확량의 20% 이상이 썩어 상품성이 없다”며 “농사 인건비는 물론, 병해충 약제값도 못 건질 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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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실이 나무에 달린 채 썩는 ‘수부증’ 골치
지난 3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의 한 농장에서 열린채 썩어가는 극조생 감귤. 최충일 기자
제주 감귤 농가가 잦은 가을비에 울상이다. 본격적인 수확철을 맞았지만, 감귤이 나무에 달린 채 썩는 피해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설상가상 올해 생산량 증가로 가격마저 내려가면서 농가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4일 제주도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최근 서귀포지역을 중심으로 극조생 노지감귤에서 ‘수부증’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수부증은 과실이 나무에 달린 상태에서 썩는 현상이다. 일반 감귤보다 일찍 익는 극조생 감귤은 이르면 10월부터 수확하는데, 올해는 수확 직전 이어진 비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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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철 불청객 가을비…. 10월엔 9일 연속 내려
지난 3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의 한 농가의 극조생 감귤 수확 현장. 최충일 기자
제주기상청에 따르면 서귀포지역에는 지난달 18일부터 26일까지 9일 연속 비가 내렸다. 이달 1일에도 10.5㎜의 비가 내렸다. 수확을 앞둔 감귤에 많은 비가 내리면 당도가 떨어지거나 껍질이 부풀어 오르는 ‘부피과’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높은 습도도 감귤 부패 위험을 키운다. 수확을 마쳤다고 안심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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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기 전까지는, 가장 좋은 환경이었는데….
지난 3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의 한 농장에서 열린채 썩어가는 극조생 감귤을 제거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농업기술원이 확인한 일부 유통센터에서는 입고된 극조생 감귤의 약 30%가 이틀 만에 부패했다. 선별을 마친 감귤도 내륙으로 운송하는 과정에서 4~5%가 추가로 썩는 것으로 조사됐다. 농장에서 출하한 감귤이 소비자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상품성을 잃는 것이다.
제주농가는 당초 올해 노지감귤은 품질에 대한 기대가 컸다. 농업기술원이 지난 8월 감귤관측조사위원회와 실시한 조사에서 올해 노지감귤 평균 당도를 8.5브릭스로 전망했다. 지난해보다 1.1브릭스, 최근 5년 평균보다 1.4브릭스 높은 수치다. 지난 7~8월 기온이 높고 비가 적어 일조 조건이 좋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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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 약제 빗물에 씻겨 병해충에도 취약
지난 3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의 한 농가에서 수확한 극조생 감귤을 박스에 담고 있다. 최충일 기자
병해충 방제도 쉽지 않다. 수확을 앞두고 뿌린 예방 약제가 빗물에 씻겨 효과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약제를 다시 살포하면 농약안전사용기준에 따라 수확을 늦춰야 할 수 있다. 농가로서는 부패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제와 적기 수확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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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보다 3만t 늘어난 생산 예상량도 걱정
3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의 한 감귤밭에 썩은 열매들이 떨어져 있다. 최충일 기자
생산량 증가와 가격 하락도 악재다. 제주도에 따르면 올해 노지감귤 생산 예상량은 44만3300t으로 지난해 41만965t보다 약7.9%(3만2300t)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달 29일 기준 평균 누계 가격은 5㎏당 9778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만297원보다 5% 낮다. 제주농산물수급관리센터는 공급과잉과 저품질 감귤 유통을 가격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했다. 지난달 서울 가락시장에서 사과와 배 가격이 지난해보다 각각 38%, 27% 하락하는 등 다른 과일의 가격 약세도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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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 시기 남은 조생, 온주 감귤은 상품성 유지”
지난 3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의 한 농가에서 수확한 극조생 감귤. 최충일 기자
제주도는 지난 2일 감귤 가격 안정 대책회의를 열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감귤의 유통 차단과 분산 출하를 강화하기로 했다. 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수확 시기가 아직 남은 품종(조생·온주감귤)은 점차 당도가 오르고 상품성을 유지할 것으로 에상한다”며 “소비자를 위해 이미 수확을 마친 극조생 감귤은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2~3일간 말리는 과정을 거친 뒤 썩은 열매를 철저히 골라 출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