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7.57% 하락한 20만1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에는 19만9800원까지 떨어지며 7월29일 이후 처음으로 장중 20만원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 역시 9.46% 급락한 126만4000원에 장을 마쳤다.
5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반도체 투톱의 추락은 한국 증시 전체를 끌어내렸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300포인트(5.28%) 하락한 5383.80에 장을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 4월3일(5377.30) 이후 가장 낮다. 외국인이 3조4324억원을 순매도하며 급락을 주도했다.
이는 지난 6월19일 기록한 코스피 장중 최고점 9385.59보다 42% 이상 급락한 수치다. 통상 고점 대비 20% 이상 떨어지면 ‘약세장(베어마켓)’으로 분류하는데, 이를 두 배 이상 넘어섰다. 주요 개인투자자 커뮤니티에서는 “10월이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 밑에 또 지하가 있었다”, “레버리지에 투자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등의 탄식이 나왔다.
코스닥 역시 36.54포인트(5.11%) 내린 678.41에 마감했다. 장중 낙폭이 커지며 두 시장 모두 프로그램 매도 호가 효력을 일시 정지하는 ‘매도 사이드카’가 잇따라 발동됐다. 해외에선 반도체 업종 비중이 큰 대만 가권지수가 3%대, 일본 닛케이가 1%대 하락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반도체주 폭락의 진앙은 전날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다. 상·하원 주도권을 모두 장악한 민주당이 데이터센터 신축과 증설에 제동을 걸 것이란 관측이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했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이번에 당선되거나 우세를 보인 36개 주 주지사 가운데 34명이 데이터센터 규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간밤 뉴욕 증시에서 마이크론(-7.00%)을 비롯해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3.13% 급락한 이유기도 하다. 다우존스30(3.03%)·나스닥(1.44%) 등이 오른 것과 대비된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에서 계획된 데이터센터 증설 용량의 약 45%가 일시적인 사업 중단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하지만 “데이터센터 건설 제동이 일부 기업과 투자자들에게는 뜻밖의 ‘숨고르기 기회’가 될 수 있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시각도 있다. 최근 시장이 AI 기업들을 우려한 가장 큰 이유는 막대한 데이터센터 설비투자(CAPEX)로 인한 출혈 경쟁이었다. 그러나 규제로 인해 건설이 늦어지면, 당장 쏟아부어야 할 투자비가 굳어 기업들의 현금흐름이 개선된다.
규제 강화가 AI 투자 축소로 직결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래에셋증권은 규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미국 데이터센터 용량을 최대 13GW로 추산했다. 이는 2035년까지 예상되는 신규 증설 용량의 약 8% 수준에 불과하다.
다만 단기 전망은 신중하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AI 규제 강화 우려에 앤트로픽 상장 전 수급 불안까지 겹치면서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앤트로픽 상장이 마무리되고 엔비디아의 실적과 가이던스(향후 실적 전망)가 좋아져야 시장의 방향이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