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인 2018년 12월 3일, 서울 공덕역 인근의 한 카페에서 KLPGA 투어 ‘슈퍼루키’ 조아연을 만났다. 베트남에서 열리는 프로 데뷔전에 나서려고 공항으로 가던 길이었다. 열여덟 살 소녀는 볼에 젖살이 통통했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몇 년 동안 OB가 난 적이 없어서 OB를 잘 몰라요.” 농담 반 진담 반이었지만, 그만큼 뛰어났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프로 대회에 20번 나가 컷 탈락은 두 번뿐이었다. 통과율 90%였다.
8년이 지나 같은 자리에서 다시 마주 앉았다. 지난달 말 허리 디스크로 은퇴를 발표한 뒤였다. 아직 스물여섯이다. 마흔 넘어서도 투어를 뛰는 선수가 흔한 골프에서, 신인왕 출신이 이 나이에 필드를 떠나는 건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2018년 12월 프로로 첫 경기 직전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는 조아연. 성호준 기자
그의 은퇴 인터뷰를 이렇게 빨리 하게 될 줄은 몰랐다. “OB를 모른다던 선수가 이제는…” 하고 말을 꺼내자 그가 웃으며 받았다. “프로 생활을 하면서 OB를 너무 잘 알게 됐어요.”
훨씬 세련되고 예뻐졌다. 손에는 우승컵 4개와 신인왕 타이틀이 남았다. 그래도 그 시절 그에게 쏠렸던 기대에 비하면 적은 수확이다. 프로가 되어 프로 대회 컷통과율은 아마추어 때보다 낮은 77.2%에 불과했다.
루키 시즌인 2019년이 조아연의 하이라이트였다. 데뷔 두 번째 대회에서 우승했고, 한 해 2승으로 신인왕에 올랐다. 그해 겨울 달리는 말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뉴질랜드 전지훈련에서 석 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공을 쳤다. 늘 아버지의 성화에 떠밀려 연습하던 그가 처음으로 스스로 원해서 한 훈련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했으니까, 제가 못 칠 거라는 생각은 1%도 안 했어요.” 이듬해 시합마다 기대가 어긋났다. “100% 확신했는데 그게 완전히 틀린 거잖아요. 불신이 점점 커졌어요.” 아마추어 시절엔 자신감이 넘쳐 과감하게 핀을 공략했지만, 프로에선 생각과 걱정이 늘었다. 그는 “잘했을 때 칭찬도 해주고 쉬기도 해야 했는데, 나한테 채찍질만 했다”고 했다.
조아연은 아마추어 선수지만 LPGA투어 등 프로 대회에 20차례 출전해 17번 컷을 통과했다. 사진은 조아연의 아이언샷 모습. [사진제공=KLPGA 박준석]
몸도 무너졌다. 2022년 갑상선 기능 저하와 위장 질환으로 몇 달 사이 체중이 16㎏ 빠졌다. 살은 다시 찌웠지만 줄어든 비거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거리를 되찾으려 세게 휘두르다 허리가 탈이 났다. 올해 초엔 누워서 다리를 들어 올릴 때 허리를 바닥에 붙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은퇴한 운동선수들은 목표를 잃고 우울증을 겪는 경우가 많다. 조아연은 밝았다. 버팀목은 책이었다. 4년 전, 예선 탈락이 이어지던 시기에 책을 펴기 시작했다. 에세이든 소설이든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만나면 공책에 옮겨 적는다.
조아연 인스타 사진
대회장으로 이동 중에도 책을 봤다. “다행히 차에서 책을 봐도 멀미를 안 하더라고요.” 이모의 권유로 성경 필사도 한다. 주말이면 엄마와 카페에 갔다. 엄마는 뜨개질을 하고, 딸은 필사를 했다. “글자를 따라 쓰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로리 매킬로이는 2018년 부진과 부담감에 짓눌렸을 때, 의사 친구의 권유로 저글링을 시작했다. 조아연에겐 펜이 그 공이었다. 한 글자씩 옮겨 적으며 그는 깊은 마음의 늪을 빠져나왔고, 잃어버렸던 자신을 찾았다.
조아연이 필사한 노트. 사진 조아연
그의 필사 노트를 펼치면 검은 펜 글씨가 빼곡하다. 살짝 오른쪽으로 기운 글자는 크기가 고르다. 줄은 격자를 따라 자로 잰 듯 반듯하다. 지우거나 고쳐 쓴 자국이 거의 없다. 성경 노트는 장마다 연보라색 수채 동그라미를 찍어 제목을 달았다. 키보드와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세대에게선 좀처럼 보기 힘든 손글씨다.
옛사람들은 ‘글씨는 곧 그 사람’이라고 했다(서여기인·書如其人). 서예를 심신 수양으로 여긴 이유다. 마음이 흔들리거나 조급하면 붓끝이 먼저 알아채 선이 흐트러진다. 마음이 평온하고 발라야 비로소 묵직하고 힘 있는 획이 나온다.
공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날카롭게 곤두서 있던 선수가 이렇게 흔들림 없는 글씨를 쓰게 되기까지, 그의 마음도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다.
가장 크게 와닿은 구절은 김수현의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에서 옮겨 적은 문장이라고 했다. “약간의 근자감과 어느 정도의 개썅마이웨이 정신이 필요하다.”
조아연은 에세이든 소설이든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만나면 공책에 옮겨 적는다. 그의 필사는 자로 잰 듯 반듯하다. 사진 조아연
조아연은 “보여지는 직업이라 늘 남의 시선을 먼저 생각했어요. 그 구절을 보는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나를 없애고 사람들 시선에 나를 끼워 맞추려 했구나”라고 했다. 골프 선수가 치장하면 “꾸미느라 성적이 안 난다”는 소리를 듣던 시절이었다. 이후 그는 마음대로 하고싶은 대로 꾸민다.
책을 읽은 뒤로 말을 잘한다는 소리도 자주 듣는다. 손재주도 남다르다. 응원 오는 팬들에게 줄 송년 선물로 골프화에 직접 그림을 그려 보냈다.
다음 꿈은 쇼트게임 코치다. 8년 전 그는 ‘아이언의 달인’이었다. 이름이 아연이라 아이언을 잘 치느냐는 농담을 들었고, 실제로 그랬다. 그런데 그는 “루키 때는 아이언이 너무 좋아서 쇼트게임을 할 일이 없었다”고 했다.
샷이 무너져 그린을 놓치는 일이 잦아지자 쇼트게임 기회가 늘었고, 동료들 사이에서 최고라는 평을 들었다. 누구에게 배운 적 없이 감각과 상상력으로 터득했다.
방송 일과 공부를 1년 반쯤 병행한 뒤 주니어와 중·고교 선수들을 가르치겠다고 했다. “방송은 방송이고, 코치는 무조건 실력으로 가야 해요.” 외모나 인기가 아니라 실력으로 1등 교습가가 되겠다는 얘기다.
선수 때만큼 화려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안다. “많이 벌 때 사치도 부려 봤고 할 건 다 해봤어요. 이제는 검소하게 아끼면서 살 수 있고, 최소한 먹고살 만큼은 뭘 해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8년간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었다. 답은 짧았다. “사람은 휴식이 필요하다.” 은퇴 다음 날 아침,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그를 깨웠다. “백수 첫날 축하해.” 조아연은 “골프로는 잃은 게 많지만, 조아연이라는 사람의 인생으로 보면 얻은 게 많은 시절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