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외국인 사이에서 ‘공연’이 관광 콘텐트로 뜨고 있다. 방탄소년단·블랙핑크처럼 K팝 그룹의 초대형 콘서트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외래객은 소극장 뮤지컬이나 대학로 연극, 국악 같은 전통 공연을 보러 다닌다. 대사를 못 알아듣지 않나? 아니다. 내용을 공감할까? 괜한 우려다. 서울의 몇몇 공연장을 다녀보니 외국인 관객은 한국인보다 더 격한 반응을 보이며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꽃미남 배우와 함께 에코백 만들기 지난달 22일 오후 2시 서울 정동. 넌버벌(비언어) 미술 공연 ‘페인터즈’ 전용관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2008년 초연한 페인터즈는 16개국 71개 도시에서 투어 공연을 소화했고, 누적 관람객 800만명이 넘을 정도로 정평이 난 공연이다.
막이 오르자 아이돌 뺨치는 꽃미남 배우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화려한 춤과 함께 물 위에 물감을 띄워 작품을 만드는 ‘마블링 아트’, LED 화면에 빛으로 작품을 그리는 ‘야광 드로잉’을 선보여 호응을 끌었다. 고흐의 자화상, 클림트의 키스 같은 명작이 완성될 때마다 탄성이 터졌다.
미술 체험을 연계한 ‘페인터즈’ 공연. 최승표 기자
공연이 끝난 뒤에는 특별한 순서가 이어졌다. 체험 프로그램을 예약한 관객이 무대에 올라 배우와 함께 에코백에 마블링 아트를 입혔다. 러시아인 슈라 탈란체바는 “공연 때 본 퍼포먼스를 그대로 배우는 경험이 각별했다”고 말했다.
페인터즈만이 아니다. 국내 최장수 넌버벌 공연 ‘난타’는 갓 모양 열쇠고리를 만들고, 전통 무술을 소재로 한 ‘점프’는 극장 인근 도장에서 태권도를 배운다. 지난 10월 16일부터 이달 30일까지 한국관광공사가 공연업계와 벌이는 공연 캠페인 ‘코리아 인 모션’의 일환으로, 모두 7개 공연이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페인터즈 박민우 마케팅팀장은 “K컬처의 인기가 상설 공연으로 확산하는 게 느껴진다”며 “캠페인 이후에도 체험을 이어갈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번 캠페인은 클룩·씨트립 같은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를 통해 진행한다. 입장권과 체험 프로그램을 할인해줄 뿐 아니라 12개 연극·뮤지컬은 자막이 나오는 스마트 안경을 빌려준다.
사소한 유머도 스마트 안경 덕에 즐겨 외래객 사이에서 공연이 새로운 즐길 거리로 떠오른 건 팬데믹 이후의 현상이다. 한국공연관광협회에 따르면, K팝 콘서트를 제외한 뮤지컬·연극·발레 등 공연을 관람한 외국인 관광객은 2023년 40만8000명에서 2025년 57만4000명으로 41% 증가했다. 신한카드에 따르면, 올해 1~7월 외국인의 공연 업종 카드 사용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8.8% 늘었다.
김지윤 기자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외래관광객조사 보고서는 현재 상황을 ‘초기 확산 단계’로 분석한다. 외국인 공연 관람객이 크게 늘긴 했으나, 전체 외래객 중 소수에 불과한 까닭이다. 지난해 방한 외래객 1893만명 중 공연 관람자는 3% 수준에 머문다.
외국인이 공연 관람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언어 장벽’이다. 페인터즈·점프 같은 넌버벌 공연은 괜찮지만, 대사가 중요한 연극이나 뮤지컬은 관심이 떨어진다. 현재 대사 중심의 공연 가운데 78.6%가 외국어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막안경을 끼고 뮤지컬을 보는 외국인들. [사진 한국관광공사]
캠페인 기간 12개 공연이 ‘AI 스마트 자막안경’을 빌려준 것도 그래서다. 지난달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관람한 영국인 애덤 질스트란트는 “자막 안경 덕분에 극의 흐름뿐 아니라 사소한 유머도 놓치지 않고 즐길 수 있었다”며 “한국어가 낯선 관광객에게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 백만성 한류콘텐츠팀장은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의 공연은 볼 기회 자체가 드문 반면 소극장 공연은 매일 열린다는 게 강점”이라며 “공연 관광 캠페인은 내년 이후에도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