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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서울 골목, LA에 한국 책방...한국의 일상이 궁금해 [비크닉]

중앙일보

2026.11.0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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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불을 밝힌 네온사인. ‘번개충전’ ‘퓨전요리’ ‘액세서리 도매’ 등의 한글 간판. 회색 포장도로 위에 쓰여 있는 ‘일방통행’ 문구. 한국의 흔한 골목 풍경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영국 런던 쇼디치 지역이다. 지난달 23일 한국을 배경으로 한 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4’가 출시되면서, 이를 홍보하기 위해 게임사 액티비전이 런던의 한 주차장에 만든 팝업 공간이다. 노래방, 무인 택배 보관함, PC방 등 런던인지 서울인지 모를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된 공간에 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입장한 뒤 핫도그와 초코파이를 들고 골목을 누볐다.
영국 런던 쇼디치 지역의 한 주차장이 한국 골목으로 변신했다. 한국 배경의 신작 게임 '콜 오브 듀티:모던 워페어4'가 출시되면서 이를 홍보하기 위한 'KOREAN ALLEY 팝업' 전경. 사진 콜오브듀티 공식 홈페이지

영국 런던 쇼디치 지역의 한 주차장이 한국 골목으로 변신했다. 한국 배경의 신작 게임 '콜 오브 듀티:모던 워페어4'가 출시되면서 이를 홍보하기 위한 'KOREAN ALLEY 팝업' 전경. 사진 콜오브듀티 공식 홈페이지


K-팝에서 시작된 한국에 대한 관심이 패션·뷰티·음식으로 번지면서 이제는 한국인의 일상이 세계 곳곳에서 재현되고 있다. 평범한 한국의 생활 풍경이 글로벌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이색 콘텐트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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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는 ‘K-라이프스타일’ 팝업

지난달 9일 미국 LA 한국문화원에 문을 연 ‘라온(LA:ON)’은 이른바 ‘K-라이프스타일(Lifestyle·생활 양식)’을 소개하는 체험 공간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시작한 ‘글로벌 K-존(ZONE)’ 사업의 LA 모델이다. 기존에도 한국문화원에선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다양한 전시와 행사가 이뤄졌다. 이번에는 단순 문화 교류·홍보 공간에서 K-문화와 연관 산업의 현지 시장 진출을 돕는 ‘문화 수출 거점’으로 확장했다는 게 특징이다.

문화원 1층에는 상설 전시 ‘텍스트 투 텍스처(Text to Texture)’가 꾸며졌다. ‘하나의 문자는 어떻게 하나의 문화가 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한글로 기록된 생각과 감정이 책과 물건, 공간과 취향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한지 조명과 가구, 한국 고미술품, 공예품 등으로 보여준다.

미국 LA 한국문화원의 전시 전경. 책을 통해 만나는 한국의 진짜 모습이라는 주제의 '텍스트 힙' 팝업 전시다. 사진 프로젝트 렌트

미국 LA 한국문화원의 전시 전경. 책을 통해 만나는 한국의 진짜 모습이라는 주제의 '텍스트 힙' 팝업 전시다. 사진 프로젝트 렌트


상설 전시 공간 옆 코리아센터 1층에서는 시기마다 바뀌는 팝업 형식의 전시가 이어진다. 오는 14일까지는 ‘책을 통해 만나는 한국의 진짜 모습’이라는 주제의 ‘텍스트 힙(Text-Hip)’ 팝업이 진행된다. 24일부터는 ‘K-슈퍼마켓’으로 공간이 바뀐다. 한국의 동네 슈퍼마켓을 둘러보듯 한국 음식과 생활용품, 현대 공예와 전통문화 상품을 보고 경험하는 라이프스타일 팝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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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감성’이 통째로

CJ ENM이 해마다 미국 LA에서 여는 ‘KCON’에서도 한국인의 일상이 재료가 됐다. 지난 8월 열린 ‘KCON LA 2026’은 ‘K-소울 시티(K-SOUL CITY)’를 테마로 LA 컨벤션센터를 하나의 서울처럼 꾸몄다. 여러 개의 부스가 나열된 박람회 형식이 아니라, 관람객이 서울의 한 동네를 거닐 듯 공간을 오가도록 설계했다. 구역 사이 통로는 지하철역처럼 꾸몄고, 푸드존에는 한국의 야시장 풍경을 연출했다. 먹거리와 굿즈를 파는 노점이 줄지어 늘어섰고, 관람객들은 한국의 시장통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빨간색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앉아 음식을 즐겼다. 을지로 야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풍경이 축제의 볼거리가 된 것이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사흘간 14만2000여명이 이 ‘서울’을 찾았다.

지난 8월 미국 LA에서 열린 KCON의 푸드존은 서울 도심의 야시장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사진 CJENM

지난 8월 미국 LA에서 열린 KCON의 푸드존은 서울 도심의 야시장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사진 CJENM


파리에선 한국식 식료품점이 등장했다. 앞서 런던에서 한국 골목을 재현했던 게임사 액티비전이 ‘콜 오브 듀티 4’의 홍보를 위해 지난달 프랑스 파리 1구의 한 갤러리에 한국 식료품점 ‘셰 파프(Chez Pape)’를 연 것. 한국 라면과 과자가 빼곡한 진열대를 지나면 한국식 상차림이 차려진 공간이 나오고, 냉장고 문을 열면 지하로 내려가는 비밀 통로가 이어진다. 그 끝에 컴퓨터가 줄지어 놓인 PC방이 있다. 한국 게이머들의 일상 공간인 PC방이 파리 한복판에 재현된 셈이다.

프랑스 파리 1구의 한 갤러리에 들어선 콜오브듀티의 한국 식료품점 팝업. 사진 콜오브듀티 프랑스 공식 유튜브 캡처

프랑스 파리 1구의 한 갤러리에 들어선 콜오브듀티의 한국 식료품점 팝업. 사진 콜오브듀티 프랑스 공식 유튜브 캡처


팝업만이 아니다. 2024년 미국 뉴욕에선 한국의 기사식당을 재현한 한식당 ‘기사(Kisa)’가 문을 열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글 간판에 브라운관 TV, 한국 달력과 믹스커피 자판기 등이 들어선 이른바 ‘찐(진짜) 로컬’ 감성의 공간으로 개점 직후 대기 행렬이 이어졌다. 올해 프랑스 파리에 첫 해외 매장을 연 카페 ‘오츠커피’는 서울 광화문점 가구를 만든 팀에게 파리점 가구를 맡기는 등 한국 매장을 파리에 재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한다. 한국 카페에서 유행했던 아인슈페너가 이곳의 대표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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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라이프스타일, 관람에서 경험, 구매까지

이런 공간들은 한국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이전에도 비엔날레와 같은 글로벌 전시 행사장의 한국관처럼 한국을 주제로 한 공간은 있었지만, 주인공은 주로 백자·한지 같은 전통 공예품이나 미술 작품이었다. 최근엔 골목과 PC방, 야시장, 슈퍼마켓 등 한국의 일상을 담은 공간들이 주요 콘텐트가 됐다. 단순 감상에서 경험으로, 경험 이후 구매까지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경우도 많다.

2022년 열린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V&A) 박물관의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Hallyu! The Korean Wave)’ 전시가 전환점이 됐다. 세계적 박물관이 K-팝, 드라마 등 현대 한국의 대중문화와 일상 문화를 정식 전시 대상으로 다룬 사례로, 이후 한국을 소개하는 전시와 공간들이 참고하는 선례가 됐다. K-드라마 속 편의점과 아파트, PC방이 그대로 팝업과 전시의 재료가 되는 이유다. 여기에 문화 경험을 소비재 수출로 연결하려는 정부와 기업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지난 2022년 열린 영국 V&A 박물관의 '한류! 더코리안웨이브' 전시 전경. 한국의 대중문화, 일상 문화를 전시 주제로 다뤘다. 사진 V&A 공식 홈페이지

지난 2022년 열린 영국 V&A 박물관의 '한류! 더코리안웨이브' 전시 전경. 한국의 대중문화, 일상 문화를 전시 주제로 다뤘다. 사진 V&A 공식 홈페이지


LA 한국문화원 라온의 상설 전시와 텍스트 힙 팝업의 기획을 담당한 최원석 디렉터는 “지금 해외에서 궁금해하는 건 정말 한국에만 있는 것, 그리고 지금 한국 사람들이 실제로 즐기고 관심을 두는 것”이라며 “물건도 ‘K’만 붙인다고 팔리는 게 아니라, 그 물건이 놓인 문화적 맥락과 이야기 안에서 소개될 때 더 잘 팔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라면도 그냥 한국 라면이 아니라 한강에서 끓여 먹는 ‘한강라면’ 같은 일상 문화가 함께 전해져야 사람들이 그 경험을 사고 싶어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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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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