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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다수결은 늘 옳은가?

Chicago

2026.11.05 13:20 2026.11.0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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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손헌수

11월 3일에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 상원과 하원의 다수당 지위를 모두 차지했다. 2년 전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 힘을 실어주었던 미국 유권자들이 이번에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2년 전의 다수는 틀렸고 이번 다수는 옳은 것일까? 진리가 2년 만에 바뀐 것일까? 고등학교 시절 화학 선생님은 가끔 객관식 문제를 내시고 반 학생들에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항목에 손을 들어 보라고 하셨다. 흥미롭게도 가장 많은 학생들이 선택한 답이 틀린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이래서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야.”
 
그때는 반박하지 못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나름대로 생각이 정리되었다. 지식과 지혜, 그리고 의견은 개념이 서로 다르다. 지식은 진리를 향해 가는 과정이지 반드시 진리 그 자체는 아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에는 천동설이 오랫동안 권위 있는 진리였다. 만일 화학 선생님이 그 시대에 태어나셨다면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가르치셨을 것이다. 그리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학생들에게 틀렸다고 하셨을 것이다. 자연의 법칙이나 지식은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는다. 백 명이 틀리고 한 명이 옳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지식’이 어떤 것이 사실인지를 아는 능력이라면 ‘지혜’는 그 지식을 바탕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1986년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발사를 앞두고 일부 엔지니어들은 추운 날씨로 인한 위험을 경고했다. 그러나 발사는 강행되었고 비극적인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소수의 판단이라도 충분히 지혜롭고 근거가 있다면 다수의 확신보다 옳을 수 있다. 지혜로운 소수의 사람이 다수의 어리석은 사람보다 옳은 결정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의견은 다르다. 어느 마을에서 주어진 땅에 공원을 만들 것인지 주차장을 만들 것인지 다수결로 정하기로 했다고 해보자. 소수의 교통, 경제 전문가들은 주차장이 마을에 효율적이라고 주장하지만, 다수의 주민들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노인들이 산책할 공원을 원한다. 누가 옳은가? 전문가는 경제성과 효율성을, 주민들은 삶의 질을 더 중요하게 여길 뿐이다. 물론 제대로 된 사회는 지식과 지혜가 뛰어난 사람의 의견을 존중한다. 또한 사람들의 지식과 지혜가 늘어남에 따라 의견도 바뀔 수가 있다. 하지만 함께 사는 사회에서 선호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을 때는 다수결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주 좋은 의사결정 방식이 될 수 있다.
 
지식에는 정답이 있을 수 있지만, 가치나 선호에 대한 의견에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수결은 그래서 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의사결정의 한 방식인 것이다. 다수결에도 위험은 있다. 북한 같은 사회는 3대째 돼지 가족을 신 같은 영도자로 모시고 있다. 지금 투표를 하면 대다수가 어린 딸돼지를 차세대 지도자로 선택할 수도 있다. 폭력과 억압으로 지식과 지혜와 의견까지 막아놨으니 밖에서 보면 그 동네의 다수결은 아무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폭탄놀이를 즐기는 돼지 가족이 진리라고 믿는 사람이 다수일 것이다. 그래서 사회에는 다수결뿐 아니라 구성원의 자유와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구성원 스스로 자신의 판단을 언제나 바꿀 수 있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선거를 통해 수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힘은 다수가 항상 옳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지식과 기회와 자유가 보장된다는 데 있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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