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막다른 골목 중간에 있다. 11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일이다. 골목 어귀에서 강아지만 한 고양이와 마주쳤다. 앉음새는 수리부엉이처럼 근엄하고 준수해 보였고, 검은 줄무늬 사이 가슴팍에 소복이 올라온 하트모양의 흰색 털이 시선을 끌었다. 산책할 때마다 간식거리를 던져 주었더니 슬금슬금 우리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우리 집 앞에 진을 치더니 아예 돌아갈 기미가 없어 보였다. 골목 어귀에 사는 사람에게 주인 아니냐고 물었더니, 전에 살던 사람이 버리고 간 고양이 같다며 되레 우리에게 잘 돌보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키(Key)’라는 이름을 지어 이름표에 새겼고 그것을 목에 걸어 주었다. 녀석이 바깥 생활에 익숙한 것 같아 집안에 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림 같은 고양이 전용 단독주택이 뒷마당에 자리를 잡았고 녀석은 딸린 발코니에서 사지를 벌리고 늘어지게 잠을 잤다. 곁을 내주며 만질 수 있게 하고, 안기기까지 몇 년이 걸렸지만 녀석은 그렇게 우리 식구가 되었다.
그런데 몇 주 전 뒷마당에 코요테가 나타났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날 아침, 문 앞에서 아침밥을 기다리고 있어야 할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먹을 것을 담아 문 앞에 내놓고 카메라로 고양이를 찾는 순간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코요테 두 마리가 뒷마당에 나타났고 자다가 혼비백산 도망치는 Key를 두 코요테가 쫓고 있었다.
남편과 파자마 바람으로 밖으로 뛰쳐나가 혹시 핏자국이나 뽑힌 털이 있는지 집주 위를 샅샅이 살폈지만 그런 흔적은 없었다. 이름을 부르며 동네를 돌아다녔지만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잡혀먹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다리가 후들거려 걸을 수도 없었다.
이틀이 지나도 고양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녀석이 쫓기는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집안에 들이는 것을 반대했던 나 때문에 녀석이 결국 이렇게 죽었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 집안 분위기 또한 물속에 가라앉은 듯 침체되었다.
왜 갑자기 코요테가 나타났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뒷집에서 키우던 시베리아 허스키 개가 보이지 않은 것이 몇 개월째였다. 주인이 외출하면 밤이고 낮이고 울어대던 큰 개가 없어지자 코요테가 고양이 냄새를 맡고 주택가 깊숙이까지 들어온 것 같았다.
Key가 사라진 지 사흘째 날, 담장 위로 익숙한 물체가 지나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내 비명을 듣고 남편이 뛰쳐나와 녀석을 번쩍 안아 들었다. 발톱이 빠져 피가 묻어 있었을 뿐 달리 이상은 없어 보였다. 어디서 꼼짝 않고 숨어 배를 곯았는지 밥 세 그릇을 단숨에 해치웠다. 밥을 먹는 동안도 두리번거리며 경계를 풀지 않았다.
녀석이 살아 돌아온 지 일주일 째 되는 날 뒷마당에 다시 코요테가 나타났다. 놓친 먹잇감을 잡을 요량으로 같은 장소로 돌아온 것이다. Key는 이미 근처에 코요테가 와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 자식 죽는 꼴을 볼 수 없다는 급박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녀석을 살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리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Key가 특별히 좋아하는 간식으로 유인해 녀석을 차고 안에 가두었다. 물그릇, 밥그릇, 폭신한 잠자리까지 함께 넣어주었다. 날이 밝으면 선심 쓰는 양 차고 문을 열어나가도록 해 주었다.
녀석은 차고에 갇히는 밤이면 밤새도록 문 앞에 앉아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위협에서 보호하겠다는 명목이었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묶어 가두어두는 것이 진정 옳은가. 본성이 다른 개체를 붙들어 인간 기준의 삶을 부여하려는 것은 아닌가. 카메라에 비치는 녀석을 보며 너를 사랑해서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나 하니. 나는 이런 구차한 변명을 하며 나 자신과 고양이를 동시에 괴롭히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Key는 더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 골목 저 골목 찾아다니다 녀석을 발견한 곳은 바로 앞집 현관 앞에 서 있는 높은 기둥 꼭대기였다. 녀석이 그렇게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코요테는 절대로 올라갈 수 없는 높이였다.
녀석은 늘 우리 눈높이에 있었고, 우리와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우리가 자는 시간에 잠을 잤다. 고양이가 높은데 올라가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고양이에게 야행성이 있다는 것까지도 나는 잊고 있었다. 저렇게 높은 곳에 올라간 것을 보고 놀라는 내게 녀석은 자신만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녀석은 더는 안전하지 못한 곳이 돼 버린 맞은편에 있는 우리 집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맛있는 음식이 차려져 있던 곳이었다. 가장 안전하고 행복했던 공간이 코요테의 위협뿐 아니라 감옥으로 변해 버렸다. 그 아름답던 순간들을 모두 잃어버린 녀석은 풀이 죽고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가슴이 아려왔다.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세상의 거친 풍파 속으로 온전히 놓아주는 일임을 알면서도, 그 내려놓음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 부모의 울타리 없이도 어떤 시련이든 견뎌 내리라 믿어주는 것, 스스로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음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식을 향한 참된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남편이 우리 Key는 코요테에게 잡아먹힐 만큼 나약하지 않다는 것을 믿자고 말했다. 그래, 동네에서 제일 용감한 고양이가 아닌가.
며칠 후 점심때 손님처럼 찾아온 녀석의 목에 남편이 위치 추적기를 달았다. 이제 녀석이 어디서 밤을 지새우고 있는지는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Key를 다시 세상으로 내 보냈다.
핸드폰 화면 안에 귀여운 만화 그림이 된 Key가 동네를 돌아다닌다.
“한 군데에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하고 내가 묻자, ”그때는 사체를 찾으러 가야지“ 남편이 담담하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