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34년생으로 올해 아흔 두 살이 되었다. 남들은 지난 삶을 정리하면서 쉬어야 할 나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도 매일 책상에 앉아 영어공부를 한다. 처음에는 미국 땅에서 살면서 “이 나라 언어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한 공부였지만 어느덧 영어 공부는 내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이자 일상이 되었다.
내가 처음 영어를 접한 과정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달랐다. 실향민인 나는 어릴적 학창시절을 북한에서 보낸 까닭에 러시아어를 먼저 배웠다. 이후 남한으로 내려온 후에야 영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영어 문법을 배워보니 러시아어와 인칭과 수, 격과 성 같은 개념들이 참 많이 닮아 있었다. 그 덕분에 생소하기만 했던 영어가 한층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이 내 평생 영어탐구의 첫 단추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미국에 온 후에는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됐다. 미국 생활을 위해 현실적으로 영어 공부가 필요한 측면도 작용했다. 그러다 영어 공부에 특히 재미를 붙일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미주 중앙일보 덕분이다.
과거 미주 중앙일보를 구독하면 일요일판 LA타임스를 무료로 보내줬던 시기가 있었다. 이때 집으로 배달되는 LA 타임스도 열심히 읽곤 했다. 그런데 신문을 읽다 보면 늘 낯선 단어들이 튀어나오곤 했다. 그때 깨달았다. 언어를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결국 어휘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던 그 날 이후 나만의 독특한 공부법이 시작되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나만의 노트에 정성껏 정리했다. 먼저 철자를 적고, 정화한 발음기호를 기재한 뒤, 그 단어가 쓰인 생생한 예문까지 함께 기록했다. 그리고 원어민의 실제 발음 (A B.C.D…)를 찾아 들으며 입으로도 익히는 연습을 반복했다. 이 노력이 쌓여 만든 단어 노트는 지금도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자 스승이 되고 있다.
아흔을 넘긴 지금도 나의 하루는 이 단어 노트를 펼치고, 원어민 발음을 듣고 따라 하면서 시작된다. 배움이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새로운 단어 하나를 깊이 이해하고 원어민의 소리에 내 목소리를 맞춰 보는 그 순간순간의 몰입과 거기서 느끼는 기쁨, 그것이 나를 매일 새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는 한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내 친구가 들려준 말이 생각난다. 비록 내일 죽는다 해도 백 년, 천 년을 살 것처럼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