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여야기] 피지, 뉴질랜드, 호주 피지 푸른 바다에서 만나는 항해와 교류의 역사 뉴질랜드 빙하와 화산을 따라 읽는 지구의 시간 호주 항구와 원주민 문화 속 떠나는 대륙 여행
피지 공화국 수도에 위치한 의회 건물.
북반구에 겨울이 찾아오면 남반구에서는 여름이 시작된다. 적도 너머에는 익숙한 풍경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산호초를 품은 피지, 만년설과 빙하가 빚어낸 뉴질랜드, 독특한 생태계와 항구도시가 어우러진 호주. 이 세 나라를 잇는 12박 13일은 남태평양의 자연을 감상하며 그 안에 쌓인 인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피지에 도착하면 먼저 반기는 말이 '불라'다. 건강과 생명, 환영의 뜻을 담은 인사에는 섬사람들의 정겨움이 배어 있다. 300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의 매력은 투명한 바다와 야자수 해변에만 머물지 않는다. 바람과 해류, 별을 읽으며 태평양을 건넜던 고대 항해자들의 이야기가 풍경에 깊이를 더한다.
피지 문화에는 멜라네시아의 전통과 폴리네시아 세계와의 오랜 교류가 함께 남아 있다. 후추과 식물의 뿌리로 만든 음료를 나누는 카바 의식에서도 환영과 존중, 공동체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1874년 영국 식민지가 된 뒤에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인도인 계약노동자들이 들어왔고, 이들의 삶은 오늘날 다문화 사회의 바탕이 됐다. 피지는 1970년 독립했다. 해변에서 만나는 여유로운 일상 뒤로 바다를 오간 사람들의 역사가 겹쳐진다.
뉴질랜드에서는 땅속의 열기와 빙하가 남긴 흔적이 전혀 다른 표정으로 여행객을 맞는다. 북섬 로토루아에서는 끓어오르는 온천수와 증기, 진흙탕을 만난다. 태평양판과 오스트레일리아판이 맞닿은 땅에서 지구 내부의 힘을 가까이 느끼는 순간이다. 남섬으로 건너가면 서던알프스의 산맥과 퀸스타운의 호수, 피오르드랜드의 깊은 협곡이 이어진다.
보웬 폭포 밀포드 사운드,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
밀퍼드 사운드는 빙하의 시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름에는 '사운드'가 붙지만 지형학적으로는 빙하가 만든 피오르드다. 거대한 얼음이 오랜 세월 산을 깎아 U자형 계곡을 만들고, 빙하기가 끝난 뒤 바닷물이 들어와 지금의 풍경을 완성했다. 절벽을 타고 떨어지는 폭포와 물안개를 바라보고 있으면 눈앞의 절경이 얼마나 긴 시간의 결과인지 생각하게 된다.
뉴질랜드의 역사에서도 익숙한 이름 뒤에 가려진 이야기를 만난다. 유럽 세계에 이 땅을 처음 알린 탐험가는 영국의 제임스 쿡이 아니라 네덜란드의 아벌 타스만이었다. 1642년 남섬 서해안에 도착한 그는 골든베이 부근에서 마오리 사람들과 충돌한 뒤 상륙하지 못하고 떠났다. 쿡이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127년 뒤인 1769년이다. 그는 해안선을 탐사하며 북섬과 남섬의 윤곽을 지도에 기록했다.
마오리족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전통을 선보이고 있다.
뉴질랜드라는 국명도 네덜란드 제일란트 지방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 땅의 이야기는 유럽인의 항해보다 앞선다. 수백 년 먼저 폴리네시아에서 건너온 마오리의 조상들이 정착해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마오리어 이름 '아오테아로아'는 흔히 '길고 흰 구름의 나라'로 소개된다. 1840년 영국 왕실 대표와 여러 마오리 지도자가 체결한 와이탕이 조약은 영어본과 마오리어본의 해석 차이로 토지와 주권을 둘러싼 갈등을 남겼다. 역사를 알면 여행의 시야도 넓어진다.
호주에서도 쿡보다 먼저 도착한 네덜란드 항해자를 만난다. 기록상 유럽인으로 먼저 호주 대륙에 닿은 빌럼 얀스존은 1606년 케이프요크반도 서쪽 해안에 도착했다. 쿡이 동부 해안을 탐사하고 영국의 영유권을 주장한 것은 164년 뒤인 1770년이다. 1788년에는 영국의 첫 죄수 수송선단이 오늘날 시드니 지역에 도착하면서 식민지 건설이 본격화됐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 땅에는 원주민 공동체의 삶이 이어져 왔다. 자연을 조상과 공동체, 영적 세계가 연결된 터전으로 이해하는 전통은 호주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이다. 유럽인의 정착은 원주민에게 토지 상실과 질병, 폭력과 강제이주의 고통을 안겼다. 항구도시의 화려함과 함께 기억해야 할 역사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위에 아름다운 불꽃놀이.
고대 초대륙 곤드와나의 일부였던 호주는 오랜 분리와 진화를 거치며 캥거루와 코알라, 웜뱃 등이 살아가는 생태계를 형성했다. 시드니에서는 자연과 현대 건축이 어우러진 풍경을 만난다. 덴마크 건축가 요른 웃손이 설계해 1973년 완공한 오페라하우스는 돛을 연상시키는 지붕으로 항구의 인상을 완성한다. 푸른 바다와 하버브리지를 함께 바라보는 시간은 대륙 여행의 즐거움이다.
피지와 뉴질랜드, 호주는 서로 다른 자연과 원주민 문화, 식민지 경험을 지녔다. 그 차이를 살피면서 바다를 통한 이동과 교류라는 공통의 흐름을 읽는 것이 이 여정의 묘미다. 피지의 미소에서 시작해 뉴질랜드의 빙하와 호주의 항구로 이어지는 길. 여행이 끝난 뒤 오래 남을 것은 풍경의 아름다움과 함께 그곳에서 새롭게 이해한 세상의 이야기일 것이다.
▶문의:US 아주 관광, (213)388-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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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식 교수
42년 여행업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각지의 여행코스를 직접 답사하고 개발해 직잡 안내하며 인문학겅의도 하는 여행 전문가. 역사.지리.문화.인문학을 접목한 현장 해설과 여행칼럼을 통해 여행의 새로운 가치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