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한 기판에 달린 기계식 버튼 12개. 나머지는 조이스틱, 회전식 다이얼, 터치 센서…. 키보드라는데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란 반응이 절로 나온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31일 방한해 삼성전자 사장단에게 선물한 ‘코덱스 마이크로(Codex Micro)’ 키보드 얘기다.
코덱스 마이크로는 지난 7월 오픈AI가 키보드 전문 업체 워크라우더(Work Louder)와 공동 개발한 제품이다. 가격은 230달러(약 31만원). 단순히 글자를 입력하는 키보드는 아니다. AI에 일을 시키고, 여러 인공지능(AI) 에이전트의 작업을 관리하는 일종의 ‘AI 컨트롤러(조종 장치)’다. 조이스틱과 회전식 다이얼, 터치 센서로 작업을 승인·거부하고, 에이전트를 바꿀 수 있다. 음성 명령 버튼도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반투명 버튼 6개다. 발광다이오드(LED) 색상으로 AI의 상태를 표시한다. 흰색은 대기, 파란색은 작업 중, 초록색은 완료, 빨간색은 오류 발생, 노란색은 사용자의 입력이나 승인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러 AI에게 동시에 일을 맡겨 놓고 버튼에 들어오는 불빛만으로 작업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이 제품이 기존 키보드를 대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긴 문서를 작성하거나 복잡한 코드를 직접 수정할 때는 여전히 일반 키보드가 편리하다. 신기하긴 한데, 챗GPT 열풍을 일으킨 AI 거물이 삼성 수뇌부에게 건넨 선물치고는 다소 생뚱맞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운데 오른쪽)와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단 50여명이 지난달 31일 경기도 용인 삼성인력개발원에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올트먼은 코덱스 마이크로를 선물로 건네며 “컴퓨터에 말로 지시하고 AI를 활용하는 세상에서는 키보드 전체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사람이 일일이 명령어를 입력하고 작업을 수행하는 시대에서 AI에게 업무를 맡기고 결과를 관리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 제품이 주목받는 건 오픈AI가 바라보는 미래와 맞닿아 있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트먼이 애플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와 손잡고 스마트폰 이후 새로운 AI 기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 측면에서 하드웨어 업체의 상징인 삼성에 키보드를 선물한 배경을 읽을 수 있다. 앞으로 AI 시대 경쟁력을 좌우하는 건 기능 많고 정교한 키보드가 아니라, 인간과 AI의 새로운 소통 방식을 먼저 구현한 하드웨어란 점이다. 올트먼이 삼성 사장단에 건넨 키보드는, 어쩌면 다음 세대 컴퓨터의 사용 설명서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