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면접' 속 진우(김재원)와 혜인(조이현)이 보름달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장면. 사진 NEW
“그거 알아? 계속 이렇게 걷다 보면, 달이 계속 따라오잖아. 근데 우린 평생 한쪽 면밖에 못 본대. 숨어 있는 뒷면은 끝까지 못 보는 거지.”
보름달이 뜬 밤, 청춘 남녀가 설레는 감정을 누르며 산책을 한다. 대기업 최종 전형을 함께 준비하는 경쟁자이자 입사 동기가 될 수도 있는, 좋아하는 사이. 여자가 자신의 약점을 털어놓자 남자는 보름달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달처럼 남에게 보이는 앞면과 보이지 않는 뒷면이 있다’는 위로의 메시지다. 여자는 달빛에 섬세하게 담아 보낸 말 속에서 남자의 진심을 읽고 마음을 열게 된다.
4일 개봉한 영화 ‘최종면접’(김정훈 감독) 속 한 장면이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 시험 최종 전형에 진출한 6명의 지원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최종 면접 중 벌어진 폭로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장르다. ‘극장판 치이카와:인어 섬의 비밀’‘하트 오브 비스트’ 등 외화가 3주 넘게 차지하던 박스오피스 1위를 개봉과 함께 탈환했다. 현재는 1~2위를 오간다.
영화에선 보름달이 중요한 메타포로 등장한다. ‘달의 앞면과 뒷면’ 언급은 지원자들에게 충격적 뒷모습이 있음을 암시한다. 단지 이중성 암시에 그치는 건 아니다. 보름달 아래서 산책하던 진우(김재원)와 혜인(조이현)을 연결하고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장치이기도 하다.
'최종면접' 속 진우와 혜인이 본 보름달의 모습. 사진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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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과 소망의 한국 보름달 메타포
보름달은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 세편에서 연달아 극의 중요한 장치로 쓰였다. 지난 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가능한 사랑’과 10월 개봉한 ‘여전히 찬란하게’는 둘 다 마지막 장면에서 보름달이 등장한다.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에선 만물에게 평등한 광원인 보름달이 계급 차이를 도드라지게 하는 역설을 만든다. 해고 노동자 호석(설경구)의 부인인 미옥(전도연)과 이들을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의 대화에서다.
미옥은 호석과 헤어졌다가 자신의 공장에서 재회한 날 함께 보름달을 본 추억을 꺼낸다. 그러자 예지는 자신도 미국 유학 중 아르바이트로 고생하다가 보름달을 본 일화를 말했다. ‘비슷한 시기니 같은 보름달인지도 모른다’며 공감대를 형성하려 하지만 미옥은 계급 차이를 느낀다. 예지와 부유한 남편 상우(조인성)의 결혼도 미국 시절이 계기였다.
영화 '가능한 사랑'에서 호석(설경구)과 미옥(전도연)이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차가운 역설에만 그치진 않는다. 보름달은 마지막 장면에서 깨어진 미옥과 예지의 관계를 이을 가능성이자 위로로 기능한다. 보름달을 오랜 시간 비추는 엔딩신은, 관객의 심금을 울리면서도 ‘해석 욕구’를 자극하기도 한다. 포털 사이트에는 ‘가능한 사랑 보름달 의미’가 영화 코너의 검색 추천 문구이기도 하다.
송일곤 감독의 ‘여전히 찬란하게’에선 만월이 초승달과 대비를 이루며, 비극의 시대를 산 한 소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과 우정, 꿈의 찬란함을 상징한다.
‘여전히 찬란하게’는 일제가 태평양 전쟁으로 사람과 물자를 잔혹하게 동원하던 1943년 경상도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둘도 없는 단짝 소녀 순옥(박서경)과 정임(최주은)의 꿈많은 모습은, 노인이 되어 재회한 현재 시점(1991년)을 오가며 대비된다. 기억을 잃어가는 정임(차미경)과 못다 한 정을 나누려는 순옥(김혜자)의 애틋한 모습은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하다.
정임은 희미한 초승달이 예쁘다며 두손 모아 소원을 빌던 순수하고 다재다능한 소녀였다. 하지만 운도 초승달처럼 가녀린 듯, 순옥과 운명이 교차하며 일제에 끌려가고 만다. 정임이 해처럼 밝은 보름달 아래서 순옥과 자신의 첫사랑 두영(문성현)을 앞에 두고 노래하는 마지막 장면은 아름답고 먹먹하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비슷한 시기에 여러 영화에서 같은 상징물이 중요한 장치로 나온 게 흔히 있었던 일은 아니다”라면서 “한국 문학 속 달의 정서가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필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전히 찬란하게' 한 장면. 1943년 경상도 산골에 살던 순옥과 정임의 모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캡처
서양에서 보름달은 광기, 불길함, 변신, 초자연적인 힘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동양에선 그리움, 연결, 허무한 아름다움 같은 서정적인 메타포인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에선 소중한 사람 사이의 연결, 그리움의 정서가 짙다. 가장 오래된 우리말 노래인 백제가요 ‘정읍사’는 행상 나간 남편의 귀갓길이 무사하기를 비는 여인의 노래, 근대 시인 김소월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에서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환기하는 매개체다.
영화 ‘최종면접’에서 보름달은 원작 일본 소설 『여섯 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2021)과 동명의 일본판 실사 영화(2024)보다 이런 정서가 짙다. 일본판 영화에선 두 사람이 보름달을 보는 장면이 ‘달의 앞면과 뒷면’을 언급하는 수준에서 건조하게 지나가고, 소설에서도 관계가 한국판처럼 깊게 연결되지 않는다.
이성민 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드라마 ‘서울의 달’(1994)이 한국인의 정서에 대중적으로 자리 잡은 영상 속 달의 이미지라 분석했다. 이 교수는 “‘달동네’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현실은 팍팍하고 (달과의 거리처럼) 꿈의 간극은 크지만, 소망을 잃지 않는 정서도 한국적 특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