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남동 리만머핀 갤러리에서 열리는 김윤신 개인전 '새로운 연속'에 나온 회화조각 '노래하는 나무' 연작들. 사진 리만머핀 서울
“100살 넘어서까지 작업하고 싶어요. 작업하다가 그 순간에 떠나는 게 꿈이에요.”
지금도 매일 점심부터 저녁까지 작업실에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며 작업하는 현역 조각가 김윤신(91)의 말이다.
그는 서울 한남동 리만머핀 서울에서 개인전 ‘새로운 연속’을 12월 24일까지 연다. 1999년의 회화 ‘무제’부터 신작 회화 연작 ‘영혼의 빛’을 비롯해 조각과 회화조각 등 35점을 선보인다. 처음 공개하는 회화 연작 ‘영혼의 빛’은 기하학적인 구조와 씨앗, 꽃, 물결을 연상시키는 유기적인 형태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생명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순환의 힘을 표현했다. 캔버스에 물감을 쌓고 긁어내거나 찍어내길 반복하며 역동적 화면을 만들었다.
서울 한남동 리만머핀 갤러리에 출품한 회화조각 '노래하는 나무' 옆의 김윤신. 권근영 기자
1964년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각 및 석판화를 전공한 그는 “석판화를 배우면서 그림은 붓으로만 그리는 게 아님을 알았다”며 “찍어내는 순간마다 내 감정과 힘이 담기기에 같은 재료와 형태로도 똑같은 게 없다”고 말했다.
그의 목조각에는 끌과 전기톱을 든 작가의 손이 지나간 흔적이 비정형의 나뭇결과 어우러진다. ‘노래하는 나무’ 연작은 이 목조각을 금속으로 떠낸 뒤 그 위에 색을 입힌 연작이다. 작품을 야외에 오래 보존하기 위한 방편이다. 김윤신에게 회화와 조각은 별개의 작업이 아니라 우주를 이해하는 각각의 방식이며, 이 두 행위가 한 표면 위에서 합쳐지면서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
김윤신, 영혼의 빛 2026-14, 2026, 캔버스에 아크릴, 150x180x3cm 사진 리만머핀 서울
2000년대부터 본격화한 채색 조각은 남미 선주민인 마푸체족의 토테미즘에서 받은 영감과 수수깡이나 물들인 촛농을 갖고 놀던 유년기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손으로 재료를 만지며 자신만의 형태를 찾아가는 시간의 중첩에 경쾌한 색의 조합, 나뭇결에 더한 붓터치가 생명력을 준다. 조각의 표면에 알록달록 그림을 그려넣는 작업을 김윤신은 ‘회화조각’이라 부른다. “3차원인 조각이 2차원의 그림을 그렸을 때 나오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며 “후손들이 새로운 걸 찾아낼 수 있도록 뭔가 하나 남기고 싶다. 회화조각이라는 이름을 미술사에 하나 남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윤신은 1959년 홍익대를 졸업하고 파리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전공했다.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했고 200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열었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참여 후 한국으로 영구 귀국, 국내에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1999년작 '무제 1999-6' 앞에 선 김윤신과 김란 김윤신조형예술연구소장(왼쪽). 권근영 기자
김윤신의 대표작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현대미술관에서 마련한 RM 소장품전인 ‘RM x SFMoMA: 너와 나 사이’에도 전시 중이다. 또한 후배 여성 조각가 신미경, 오묘초와 함께 서울 여의도동 63빌딩의 퐁피두센터 한화의 아우돌프 가든의 ‘정원 프로젝트: 새겨지는 것들’에 참여하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 조경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가 설계한 야외정원 13개 화단에 세계 각국의 꽃나무 50여종 2만5000여 그루가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선사하는 가운데 김윤신의 채색 회화조각, 비누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풍화되어가는 신미경의 천사상들, 오묘초가 설치한 미지의 생명체가 함께 놓였다.
10월 6일 2026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김윤신과 임선애 감독(오른쪽). 사진 국제갤러리
김윤신은 올봄 호암미술관 개관 이래 첫 한국 여성미술가로 대규모 회고전을 열고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를 공개하며 레드카펫에 오르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내년 개봉 예정인 그의 다큐 ‘김윤 신은 미술관에 없다’는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김윤신의 삶과 이를 가능하게 한 조력자들의 이야기다. 김윤신은 “내가 해야 되는 것, 내 일이니까, 그게 내 삶이니까 꾸준히 할 뿐”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김윤신이 성신여대 조소과 강사 시절 만난 제자인 김란 김윤신조형예술연구소 소장은 “영화가 잔잔하다는 분들도 있지만, 김윤신의 클라이맥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