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중앙칼럼] ‘Just Do It’이 ‘Just Burn It’으로

Los Angeles

2026.11.08 12:07 2026.11.08 13:09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장열 사회부장

장열 사회부장

1971년의 일이다. 나이키 공동 창업자 빌 바우어만은 아침 식사를 하다 말고 결혼 선물로 받은 와플 기계에 우레탄을 부었다. 트랙을 더 잘 움켜쥐는 신발 밑창을 만들기 위한 실험이었다. 그렇게 결혼 선물은 망가졌지만, 이 실험은 훗날 접지력 좋은 나이키 러닝화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나이키의 출발점은 구호가 아니었다. 운동화와 그 신발을 신고 달리는 러너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집요함이 근간이다.  
 
승리와 도전의 대명사였던 스포츠웨어 제국 나이키가 전례 없이 추락해버렸다. 주가 폭락과 함께 최근에는 S&P 100에서 퇴출되는 치욕까지 겪었다.  
 
겉으로 드러난 원인은 경영 실책이다. 2020년 당시 CEO였던 존 도나호는 전통적인 도매 유통망과의 제휴를 끊고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전략에 올인했다. 이는 오프라인 매대를 신생 러닝화 브랜드에 내주며 안방까지 빼앗기는 빌미가 됐다.  
 
나이키의 행보를 들여다보면 추락은 그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유통 채널의 불일치는 겉으로 드러난 증상일 뿐이다. 나이키를 뿌리부터 흔든 병폐는 정체성 약화와 조직 문화의 궤도 이탈에 있다.  
 
나이키를 세계 최고로 만든 정체성은 ‘Just Do It’이라는 짧은 문장에 응축돼 있다.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 압도적인 기능성, 선수들의 승리를 향한 열망이 나이키의 DNA였다.  
 
그런 나이키가 어느 순간부터 스포츠 본연의 가치를 뒤로하고 정치적 이념인 ‘워키즘’과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에 몰두했다.  
 
그때부터 나이키의 마케팅은 스포츠의 우수성보다 정치적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일례로 2018년 프로풋볼(NFL)에서 국기 경례 거부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쿼터백 콜린 캐퍼닉(당시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을 모델로 기용한 캠페인이 그렇다. 2023년에는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딜런 멀베이니를 여성용 스포츠 브라 모델로 발탁했다.  
 
운동선수의 승리를 향한 열망, 기능성 신발의 혁신을 체감해 온 소비자들에게 나이키는 훈계조의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승리와 도전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소비자를 하나로 모았던 글로벌 브랜드가 특정 이념을 강요하며 대중을 편 가르는 순간, 팬덤의 이탈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나이키가 이념에 취한 사이 ‘Just Do It’이라는 슬로건이 ‘Just Burn It(그냥 태워버려)’이라는 조롱으로 바뀐 것도 그 무렵이다.  
 
이념적 편향은 마케팅에 그치지 않고 내부 조직 문화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내부 평가와 리더십 육성의 중심축이 세계 최고 성능의 신발을 만드는 기술력보다 DEI 수치 준수와 사회적 이니셔티브 달성으로 옮겨갔다. 그 결과 수십 년간 나이키의 기술적 뼈대를 이뤄 온 베테랑 신발 디자이너, 기술 연구원, 능력있는 스포츠 마케터들이 밀려나거나 잇따라 조직을 떠났다.  
 
이념적 평판을 앞세우는 동안 쿠셔닝 기술과 러닝화 개발이 정체되는 치명상도 알아채지 못했다. 나이키가 PC주의에 자원을 분산하는 사이, 러닝화의 본질인 편안함과 기술력에 몰두한 온(On)과 호카(Hoka) 등은 러너들의 발밑을 빠르게 점령했다. 나이키가 정치적 이념을 설교하는 동안 경쟁사는 신발 본질에 집중한 셈이다.  
 
소설가 존 링고는 2018년 소셜미디어와 블로그를 통해 문화·출판계의 과도한 좌편향과 PC주의를 비판하며 “Go Woke, Go Broke(PC주의에 빠지면 파산한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는 이후 기업들의 과도한 이념 지향이 초래한 실패를 가리키는 말로 자리 잡았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제품의 본질적인 경쟁력과 소비자가 브랜드에 기대하는 핵심 가치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나이키의 추락은 단순한 경영 실패 이상의 의미를 남긴다. 제품 혁신이라는 본업을 뒤로하고 정치적 올바름과 도덕적 우월감에 취한 기업에 존 링고의 경고가 현실이 된 사례다. 나이키는 자신들의 DNA를 되찾지 않는 한, 왕좌로의 복귀는 불가능해 보인다.

장열 / 사회부장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