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운명 손에 쥔 12살 영웅의 활약
아동들에겐 '굿', 성인들에겐 '글쎄'
감독: 개빈 후드
출연: 해리슨 포드, 아사 버터필드, 헤일리 스타인펠드
장르: SF, 액션
등급: PG-13
작품은 괜찮은데, 흥행 성적을 예측해보라면 좀 애매한 영화들이 있다. '엔더스 게임(Ender's Game)'이 아주 대표적인 예다.
영화의 배경은 먼 미래다. 지구는 곤충처럼 생긴 외계 종족에게 침략 당해 한 차례 큰 아픔을 겪었던 터다. 그 이후 지구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어린이들을 뽑아 우주의 운명을 건 전쟁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실행해 왔다. 어린이들을 쓰는 이유는 어이 없을 만큼 간단하다. 지구의 운명을 짊어졌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롭게 마치 게임을 하듯 전쟁을 지휘하게 하기 위해서다.
엔더(아사 버터필드)는 그렇게 뽑힌 어린이들 중 하나다. 유약하게 생겼지만 그 안에 비상한 전략 능력과 굳은 심지, 강한 용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그라프 대령(해리슨 포드)은 엔더를 군대 전체의 지휘관으로 뽑아 훈련시킨다. 10대 초반 어린 아이들이 모여 훈련을 받는 사관 학교의 훈련 과정은 꽤나 비인간적이다. 학교는 아이들을 외부세계로부터 차단시킨 채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서 '전쟁하는 로봇' 처럼 키워간다. 엔더가 내면에서 겪고 있는 혼란이나 불안감 따위도 철저히 무시된다.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영역 다툼 또한 마찬가지다. 엔더는 혼란에 빠지고 아픔을 겪지만, 점차 그 안의 '군대 문화'에 익숙해져 가며 전투를 통솔할 능력을 갖춰 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라프 대령은 엔더에게 아주 커다란 진실을 숨기고 있었다. 더 큰 선익을 위한 것이라 말하지만, 이는 엔더의 가치관과 신념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온다.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며 지구의 운명은 또 다른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에 들어가게 된다.
'엔더스 게임'은 흥행에 성공할 만한 요소들을 참 많이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1985년 출간돼 지난 28년간 전 세계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 온 원작 소설을 각색했다는 점이 그렇다. 이미 수많은 팬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실감나는 액션, 화려한 특수효과, 쟁쟁한 출연진까지 딱히 흠잡을 구석이라곤 찾기가 힘들다.
그런데, 영화의 타겟 관객층이 누구일까를 따지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12살 어린이가 인류의 운명을 짊어진 채 싸워나간다는 이야기가 과연 얼마나 폭넓은 관객층에게도 다가갈 수 있을까부터가 문제다. 물론 '엔더스 게임'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보이는 '어린이 영웅 탄생 스토리'가 전부는 아니다. 전쟁이 어린이들에게 미치게 될 영향이나, 군대 조직과 그 안의 문화가 보여주는 도덕적 딜레마 등에 대한 메시지가 텍스트 곳곳에 숨어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영화 속 무중력 훈련 장면이나 마치 하나의 오락 게임같은 우주 공간 내 전투 장면의 화려함에 희석돼 증발해 버렸다. 영화는 그저 타겟층이 불불명한 틴에이지 공상과학 액션물에 그쳐버린 것이다.
10대, 그것도 중학생 이하 아동 관객층에게는 분명 매력적인 영화다. 하지만 그 이상의 관객층에게 어필할 매력을 '엔더스 게임'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대화 소재가 필요해 소설 '엔더스 게임'을 열심히 읽었던 부모 세대의 관심도, 영화 '엔더스 게임'이 스크린까지 끌어오기에는 좀 부족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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