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중앙일보

광고닫기

폭풍, 바다, 그리고 로버트 레드포드

New York

2013.11.08 06:5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기사 공유
'할리우드의 전설' 로버트 레드포드
'대배우' 로버트 레드포드는 77세 노인이라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로 '곱게' 늙었다. 실제 그의 모습은 1993년 연기한 영화 '은밀한 유혹(Indecent Proposal)'의 억만장자처럼 부드러운 말투와 눈빛을 가진 매력적인 노신사에 가까웠다.

극한의 상황에서 모든 것이 발가벗겨진 상황에서 그 사람의 참모습이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물에 휩쓸리고 폭풍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면도를 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 '역시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감탄사를 절로 내뱉게 한다. 관객들은 어느새 로버트 레드포드와 함께 폭풍을 뚫고 나가며 생존을 위해 힘겹게 싸우고 있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가 아니었다면 누가 이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었을까. 스크린 속에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반적인 대본과 다른데. 무슨 생각이 들었나.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든 생각은…. 두려움이었다. 이걸 읽고선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두려웠다. 그러고나서 이 감독이 제정신인지 아닌지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J.C.를 만나고 10분이 지나자 내게 기회가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래도록 하고 싶었던 내용이라는 생각 배우로서 완전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생각. 대본이 상당히 꼼꼼하게 짜여져 있었고 준비 또한 신중하게 하고 있었다. 대담했다. 대화나 보이스오버(voiceover) 특수 효과 없이 순수한 영화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항해 경험이 있나.

"이렇게 혼자 배를 몰 정도는 아니고 아주 가벼운 정도로만. LA에서 자랐기 때문에 바다 수영 서핑 이런 것 항상 즐겼다. 아주 깊은 바다로 간 적은 없었고 해변에서 논 정도다. 캐나다 퀘백 캘리포니아 케냐 몸바사 그런 곳에서 배를 타봤다. 이번 영화같은 경험은 정말 처음이었고 낯설었다. 배운 게 참 많은데 항해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작은 디테일들을 배웠다."

-캐릭터에 대한 정보가 없는데. 캐릭터의 과거나 기타 부분에 대해 어느정도 상상하며 연기한건지.

"오 캐릭터에 대한 정보가 아주 조금은 있다. 물론 이름도 없고 자세한 내용은 없지만. 우선 이 남자는 노트를 쓴다. 아마도 가족에게 쓰는 듯하다. 둘째 무언가에 굉장히 미안해 하고 있고 셋째 무언가를 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정도 정보에서 벗어나려고 하진 않았다. 혼자라는 것 그정도면 캐릭터에 대한 정보는 충분하다. 안 그러면 너무 복잡해진다."

-실제 삶에서 이런 생과 사를 오가는 급박한 경험이 있었나.

"있다. 비행기에서다. 7년 전 쯤 부인하고 뉴멕시코 산타페에서 캘리포니아 산타로사로 가는 길이었다. 밤 10시였는데 조그만 제트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엔진 두개가 모두 멈췄다. 9분 동안. 그래서 비행기가 내려가고 있었다. 불도 없고. 그 상황 속에서 머리에 여러가지 옵션이 생각나더라. 고도가 4만1000피트에서 8000피트로 내려가는데 추락을 준비하게 되더라. 그래서 추락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생존할 수 있을까. 밑에는 사막뿐인데 어디에 추락할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체크리스트를 쭉 떠올리게 되더라.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만 했다. 결국 엔진이 다시 들어왔다 나갔다 하더니 작동됐다."

-영화에서는 허리까지 물이 찬 그런 상황에서도 면도를 하던데. 그 때 비행기에서는 어땠나.

"둘 다 아무 말 없이 조용했다. 정적이었다. 천정에서는 산소마스크가 내려오고 나도 부인도 그저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엔진이 돌아온 다음엔.

"그러곤 서로 마주봤다(And then we looked at each other)."

-실제 삶에서 그런 경험을 했으면 오히려 이번 영화는 쉬웠을 것 같은데.

"(웃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진짜 폭풍같았다. 힘들었던 점은 계속 온 몸이 젖어있다는 것. 옷도 신발도 다 축축하니 우울함의 무게가 더해지더라. 그게 제일 힘들었다."

-이 영화 후에도 혼자 보트 타고 항해할 수 있겠나.

"못하겠다. (웃음) 물론 촬영하면서 많이 배우긴 했지만 아직 혼자 보트를 몰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촬영 후반부에 우리 크루가 다함께 항해한 적이 있었는데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배 표면에 가짜 패치(patch)를 덧대고 출발했다. 사람들이 그걸 보곤 기겁하더라. 하하."

-배우로서 상을 받는 것 등에 아직 관심이 있나. 그걸로 자부심이 생기나.

"아니다. 정말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영화를 보길 바란다. 상은 언덕 위를 올라갈 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덕 꼭대기에서는 아닌 것 같다."

-길을 잃는다는 의미에서 영화가 철학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나.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은 것처럼 느낀다. 어디에 닻을 내릴 수 있는 지 발을 어디에 디딜 수 있는지. 답은 없다.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본능적으로 그 감정을 느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이주사랑 기자

[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