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이민을 왔던 70년대 만 해도 외국에 나가는 사람은 죽어서나 다시 만날 사람들이라고 간주했을 만큼 한번 해외로 들고 나는 것이 그리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이민 갈 때 가져갈 것이라고 하면서 물건을 사면 으례 사기를 당하기 일쑤였다고 하는 말이 있기도 했고 이민을 간다고 하면 꾸어주었던 돈도 떼이고 마는 일이 허다했을 정도였다.
하늘에 별따기 만큼 힘든 절차를 걸쳐 이민을 온 당시의 교포들은 대부분이 이곳에 뼈를 뭍을 각오를 하고 오는 경우였고 어쩌다 모국방문을 다녀왔다는 사람들은 여행이 목적이 아닌 집안의 대사를 치루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뜬금없이 한국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가족단위로 오고 가는 가정들도 많다. 지난 몇 달동안 가까이 지내던 한 주재원 가족이 3년의 해외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몇 년전에도 친하게 지내던 일본 주재원 가족이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6년간의 미국 생활을 겨우 한달만에 정리하고 돌아가야 한다며 서둘러 귀국을 했다.
그 때 남편과 나는 ‘개인 사정을 봐주지 않는 몰인정한 일본회사도 회사지만 거기에 적응하며 사는 일본인들도 대단하다’고 혀를 내둘렀는데 이번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 가족은 한술을 더 떠서 발령을 받은지 2주만에 짐을 정리하고 돌아간다고해서 두손 두발을 들게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요즘같이 쉽게 한국을 떠나 외국생활을 경험하고 돌아가는 가정이 많은 것이 보기좋다. 아무리 양다리 걸치기 식의 문화생활이고 수박 겉핥기 식의 해외 생활이라하더라도 그들은 무언가가 달라지고 돌아갔을 것이란 믿음에서이다.
사람이란 경험한 만큼 깨우치기 마련이라는데 조금이라도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느끼는 바가 있다는 것이 세계화를 향한 대한민국에 도움이 될 것이란 바램에서이기도 하다.
몇해 전 처음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 했을때 어느 신도시 쇼핑센터에서 아들이 나에게 물어온 말이 인상에 남는다.
숨이 막히게 푹푹 찌는 살인적인 습기와 더위의 여름날, 시원하게 에어컨디션이 된 쇼핑센터에 들어가 맛있는 스파게티를 펩시 한 잔과 함께 뚝딱 해치운 녀석은 아주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어왔다.
“마미,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코리아 타운이야,코리아 야 ” 한국이라고 해도 우리가 있던 곳은 미국보다 더 편하면 편했지 불편한 점도 없고 낯설은 면도 없으니 어린 녀석이 충분히 헷갈릴 만도 한것이였다.
그 순간 나는 아주 빠꼼이 머리를 드는 얄팍한 모국애를 느꼈다.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분간이 안 간다는 아홉살 짜리의 한마디가 마치 미국만큼이나 한국도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는 듯한 해석으로 들려왔기 때문이였다.
앞으로도 나는 한국이 강국이 되어 해외로 나들이를 가는 한국인들이 좀 더 자유롭게 드나들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더 넓은 세계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운 한국인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더도 말고 해외에 살다 돌아가는 가정의 자녀들이 입시지옥과 ‘왕따’의 세계에 시달려야 하는 사회로 돌아가야 하는 안타까움과 불안함을 벗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