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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24시간 식당이 늘어난다

Washington DC

2003.04.1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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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자정을 넘긴 시간이지만, 애난데일의 예촌식당에 20대 초반의 젊은 고객들이 빈틈없이 들어차있다. 한식당이라지만 고객의 70%는 외국인이나 영어가 편한 한인 2세들. 24시간 식당들은 이제 취객들의 해장을 위한 장소에서 밤을 잊은 젊은이들의 탈출구로 변모하고 있다.

평일 자정을 넘긴 시간이지만, 애난데일의 예촌식당에 20대 초반의 젊은 고객들이 빈틈없이 들어차있다. 한식당이라지만 고객의 70%는 외국인이나 영어가 편한 한인 2세들. 24시간 식당들은 이제 취객들의 해장을 위한 장소에서 밤을 잊은 젊은이들의 탈출구로 변모하고 있다.

 ‘24시간 오픈’이 요즘 한인타운 식당가의 중요한 키워드다. 늦은 밤 귀가하는 사람이나 새벽 출근길의 손님, 술집이 문을 닫고도 할 말이 남은 취객, 밤일거리를 찾아야하는 고달픈 이민자들에게 24시간 식당은 반가운 장소.

 리틀 리버 턴파이크(236번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애난데일 한인상가에도 지난 5개월간 이런 식당이 두 곳에서 다섯 곳으로 늘었다. ‘정선달’, ‘예촌’은 각각 7년, 5년의 ‘역사’를 지닌 24시간 영업의 선두주자들. 작년 11월 문을 연 ‘낙원식당’과 이달 초 문을 연 ‘텔런트 문창길네 양평서울해장국’이 처음부터 24시간 한식당을 표방했고, ‘만포면옥’도 지난 겨울부터 ‘설렁탕’을 대표 메뉴로 밤새 문을 열고 있다.

 24시간 식당이 많아져 편리한 측면도 있지만 좁은 지역에 유동성이 적은 한인 상권 내에 벌어지는 무한경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과거 근거리에 비슷한 아이템을 들고 나와 무리한 출혈 경쟁으로 공멸의 길을 걸었던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애난데일 24시간 한식당 주인들의 목소리 역시 제각각이다. 모두 한인타운 최고의 식당을 향해 큰 비용과 정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고객 입맛 분석, 시장 전망에는 차이가 있다.
 
 ■ 좁은 시장, 비싼 렌트비가 이유

 2000년을 전후해 크게 늘어난 애난데일 한식당 업주들의 공통된 불평은 시장 규모에 비해 식당이 너무 많다는 것. 그나마 안정성이 있다는 ‘먹는 장사’에 투자가 몰린데다, 한식당의 특성상 한인타운 주위에 자리잡다보니 그만큼 경쟁도 심하고, 살아남기도 힘들어졌다. 여기에 고객유치 경쟁이 지나쳐 과열, 혼탁 양상이라도 띄게 되면 어렵사리 생존자가 되더라도 깊은 상처를 입고,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24시간 영업도 이런 좁은 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장 주된 이유는 부동산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은 애난데일에서 낮 장사와 밤 장사를 겸업, 렌트비 대비 수익효율을 높여 보겠다는 것.

 생존 경쟁의 일환으로 ‘해장국’이라는 특화된 메뉴를 부각시키다보니 자연스럽게 24시간 영업을 하게 된 경우도 있다. 새벽 출근, 야간 퇴근자와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유학생이 많은 한인 이민사회의 특성에다 2차, 3차로 늘어지는 한인 특유의 술문화에 맞춰보겠다는 것도 이들의 전략. 젊은이들은 많지만 술집, 클럽이 문을 닫는 새벽 2시 이후 마땅히 갈 곳을 찾기 어렵다는 것도 24시간 한식당이 늘어나는 이유가 되고 있다.
 
 ■ ‘고정관념 파괴’ 만이 살 길

 과연 24시간 한식당은 업주들의 계획만큼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24시간 한식당을 6개월간 운영했던 한 업주는 당시 상황을 “도끼로 내 발을 찍는 심정”이라고 했다. 일반 한식당 경험을 살려 야간 주방장을 따로 영입하고 다양한 메뉴를 준비하는 등 많은 공을 들였지만 개업 6개월만에 창업비용의 절반 가량을 다시 투입해야 했다. 드물게 찾아오는 고객도 그나마 기복이 심해 어려움이 많았다고.

 제 궤도에 올라 성업 중인 24시간 한식당들도 초기 어려움은 마찬가지였다. 보통 1∼2년 가량은 별 소득 없는 피곤한 투자를 지속하다가 입소문으로 차츰 손님이 늘어났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4시간 식당의 성공 가능성은 워싱턴 포스트 매거진에서 ‘출출한 밤에 가기 좋은 식당’으로 꼽힌 바 있는 예촌에서 찾을 수 있다. 금요일, 토요일에는 하루 4∼5백여명까지 이르는 이 곳 밤고객의 70%는 영어를 구사하는 한인 2세나 중국계, 베트남계 등 외국인. 대부분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다.

 예촌도 처음에는 보조 주방장이 한정된 한식 메뉴만을 내놨었다. 1년간 매출 증가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신현영 사장은 오히려 더 과감한 투자를 했다. 야간시간대를 위해 경험 많은 주방장을 새로 고용하고 낮 메뉴를 모두 제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젊은 손님이 많다는 점에 착안 오히려 빠른 비트의 최신 유행음악을 틀고, 젊은 웨이터들을 배치하는 등 식당 분위기를 바꾼 점은 고객 유치의 기폭제가 됐다.

 분위기를 바꾼 후 1년여가 지나며 단골 고객이 생기기 시작했고, 요즘은 한인을 비롯한 애난데일 아시아계 젊은이들의 대표적인 밤명소가 됐다.
 
 ■ 새 아이템 전문점으로 도전

 양평서울해장국집은 해장국, 곰탕 두 개의 메뉴에 반찬도 김치, 깍두기 뿐이다. 24시간 식당이라면 당연히 기대할 술도 없지만 이호경 사장은 애난데일 식당가도 변할 때가 됐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금의 자리에서 술집 ‘나인틴 홀’을 오랫동안 운영했던 이 사장은 똑같은 메뉴에 깎아주기, 끼워주기 경쟁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LA, 뉴욕에서 큰 인기를 끈 한국식 해장국 전문 프랜차이즈점에 도전하게 됐다.

 경영 측면에서는 음식 공정이 표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주방장에 따라 식당 운영이 좌지우지 되는 어려움을 겪을 필요가 없고 단골 손님에게 변함없는 맛을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이 사장은 말했다. 간판, 광고 등 운영 제반 사항과 관련 본사의 표준화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이점이라고.
 
 ■ 다점포 운영으로 이점 살려

 낙원식당과 만포면옥 등은 다른 형태의 업소를 함께 운영, 24시간 식당의 묘미를 살리는 곳. 1998년 냉면전문점으로 출발한 만포면옥은 메릴랜드에서 설렁탕으로 인기가 많은 ‘옛골’과 주인이 같다.

 류승호, 혜련 부부는 단골손님들의 새벽 주문에 착안, 지난 겨울부터 버지니아 만포면옥을 24시간 업소로 바꾸고 메릴랜드에서 끓인 설렁탕을 매일 가져와 팔기 시작했다. 설렁탕 판매로 냉면집이 흔히 겪는 겨울 비수기를 잘 넘겼다는 게 류 사장 부부의 자체 분석. 또한 고기를 삶아 육수는 설렁탕에, 고기는 냉면 고명으로 쓰기때문에 재료비 관리의 효율도 높였다. 메릴랜드 옛골로 설렁탕을 먹으러 오던 DC 상인들을 비롯해서 새벽기도를 다녀오는 신도, 골프나 조기축구를 즐기는 사람 등 주로 새벽고객이 많다고.

 낙원떡집을 4년간 운영하며 자리를 잡은 정은영 사장은 떡집의 넓은 주방을 활용할 목적으로 바로 옆에 24시간 낙원식당을 열었다. 떡집으로는 식당 창업 후 늘어난 주방인력 덕에 떡과 함께 제공하는 잔치메뉴가 풍부해진 장점도 있다고. 아직 제 궤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긴 안목으로 전문 BBQ 식당으로 키워내겠다는 게 정 사장의 각오다.

 애난데일 24시간 한식당 중 가장 긴 7년의 역사를 지닌 정선달은 최근 주인이 바뀌며, 경영부진 타파와 경쟁력 제고를 위해 20여일간 가게문을 닫고 내부 개조공사를 벌였다.

 강변노래방을 운영해온 이종광 사장은 “단골 고객들의 꾸준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낡은 건물 내외관 때문에 악의적인 유언비어에 시달리기도 했다”며 “손님들이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식당 내부와 주방, 화장실 등을 완전히 고치고 새 분위기로 바꿨다”고 소개했다. 2층에는 노래방기기를 넣어 고객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19일 재오픈 한다.
 
 [애난데일 한인타운내 24시간 한식당]

 ■ 예촌식당(703-914-4646. 4121 Hummer Rd.): 불고기, 갈비 구이와 해장국 한식메뉴. 오전 2시까지 스시바.

 ■ 낙원식당(703-354-9255. 7315-7 Little River Tnpk.): 참숯을 사용 고기맛이 살아있는 생갈비, 생곱창구이.

 ■ 만포면옥(703-256-6777. 7358 Little River Tnpk.): MD 전문점 ‘옛골’에서 직송하는 진한 설렁탕. 만두, 냉면 콤미 베뉴.

 ■ 문창길서울양평해장국(703-354-0511. 4230 Annandale Rd.): 우거지, 콩나물 등 야채로만 국물을 내는 건강식 선지 해장국.

 ■ 정선달(703-642-1444, 6499 Little River Tnpk.): 7년 최고 전통. 감자국과 진한 사골국물을 사용하는 해장국이 인기.
 
 [새벽 2시까지 영업하는 식당]

 ■ 늘봄분식(703-354-7031. 7031 Little River Tnpk.)

 ■ 삼보(703-750-6846. 6669 Little River Tnpk.)

 ■ 서울순대(703-642-2220. 4231-L Markham St.)

 ■ 아난골(703-914-4600. 4215 Annandale Center Dr.)

 ■ 영스낵코너(703-642-3418. 7118 Columbia Pike)

 ■ 토담골(703-941-3400. 7331 Little River Tn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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