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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에 한의원 개원…친구들 자극됐을 겁니다"

Los Angeles

2013.12.3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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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임원서 한의사로 이승원 원장
한국서 30년의 천직 접고
50대중반 넘어 미국으로
한의과대 두려움 속 도전
20대 학생들 틈에서 경쟁
배움·성취의 기쁨 2배로
"한국 친구들 부러워 해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다. 의심하면 의심하는 만큼 밖에는 못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고 정주영 회장)

청춘을 ‘도전하기 좋은 나이’‘뭐든 새로 시작하기 좋은 나이’라고들 한다. 그래서인지 중년의 도전은 가끔 “무모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고정관념을 깨고 환갑의 나이에 한의사로서의 새삶을 시작한 이승원(60·산라몬)씨의 이야기가 더욱 값진 이유다.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그가 30년을 몸담아온 직장을 뒤로하고 아름다운 노력의 대가를 일궈낸 과정을 들어봤다.

◇미국이 기회의 땅(?)

“이 나이에 기회는 무슨….”

이승원씨는 5년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무시하며 흘려 들었다고 했다. 미국에서 결혼해 살고 있는 차녀 주미씨가 부모님을 미국으로 모시려고 전화를 할 때마다 한사코 거절했다.

한국에서 30여년을 출판업계에 종사하며 임원에까지 오른 그가 다져온 커리어를 포기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50대 중반을 훌쩍 넘어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새 삶’은 영 내키지 않았다. 아내 인숙씨와 딸아이의 설득은 결국 미국행을 택하게 했다.

그렇게 지난 2009년, 정든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한국을 떠났다. 이씨는 북가주 오클랜드힐에서 시작한 늦깎이 이민 생활 첫날이 여전히 생생하다고 했다.

“30년을 같은 시간에 출근하다 태평양 건너의 낯선 땅에서 맞이한 아침, 창밖으로 보이는 13번 고속도로의 생경함…. 아침부터 밤까지 매일같이 할 일이 없으니 이대로 있다가는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겠다 싶었죠. 뭐든 해야했어요.”

◇도전, 그 떨림

이씨는 인생의 전환점을 한의학 공부에 걸어보기로 했다.

캘리포니아한의과대학(학장 박희례) 1기로 입학했다.

“20대 초중반의 학생들과 경쟁하려니 두려움이 앞서더라구요.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등록금에, 책값에, 한두푼 드는 것도 아닌데 후회하면 어쩌나….’ 별 생각이 다 들었죠. 죽기살기로 첫학기를 마쳤는데 수석을 한겁니다. 귀한 한의학 고서와 전집 등을 상품으로 받고 축하도 많이 받았어요.” 이씨는 칭찬의 힘이 무섭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 일을 계기로 ‘어떻게든 졸업때까지 이 순간을 기억하며 이어 나가야 겠다는 각오가 생겼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 공부를 하려니 힘은 들었지만 이 나이에 하길 참 잘했는 생각을 해요. 한의학 자체가 깨달음의 학문이라는 점에서 워낙 좋아했던 한시나 동양 철학과도 연계가 되니까 점점 더 흥미를 느끼게 된거죠.”

◇또다른 문이 열리다

3명의 손주들은 거실 식탁에 앉아 늘 공부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할아버지, 또 공부해?”하고 물어보기 일쑤였다. 결국은 할아버지 덕분에 손주들도 다같이 둘러앉아 책을 읽고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보스톤에서 대학을 다니는 늦둥이 아들(주만씨)과는 시험기간에 서로 격려를 하며 동지가 됐다.

일주일에 평균 3~4일을 3~6시간 수업을 들었고, 나이탓에 암기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포스트 잇에 외울 내용을 적어 방안 가득도 모자라 화장실에까지 붙여놨다. 학교까지 오가는 왕복 2시간동안 공부한 것을 중얼거리며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그런 이씨를 맞이한 복병은 입학 1년쯤 후 학교에서 요구한 토플 점수(영어 능력 공인 점수)였다. “토플 점수를 내라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앞이 캄캄하더라구요. 어떻게든 넘어야 할 산이었죠.” 이씨는 난생 처음 토플이라는 것을 공부해야 했다. 다행히 막내 아들이 예전에 한국의 한 토플학원 동영상 강의를 듣다가 남겨놓은 자료들이 있어 동영상 강의로 공부를 했고 딸아이의 도움 등으로 무사히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지난 4년간은 매순간이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4년을 밤낮으로 한결같이 공부한 그가 한의사 시험에 합격한 것은 지난해 8월. 첫 시험에 합격했고, 9월부터 바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이달 중순에는 북가주 플레즌튼과 서니베일에 파트너 형식으로 ‘원 한의원’ 개업을 준비중이다. 캘리포니아한의과대학에서 스터디 그룹도 이끌며 학생들의 멘토 역할도 자청하고 있다.

◇도전없인 보상도 없다

“그 때 도전하지 않았다면요? 배움·성취·가르침의 기쁨을 죽을때까지 느껴보지 못했겠죠.” 워낙 책을 좋아해 출판업계가 천직이었지만 서울대 의대를 수석 졸업한 장녀(주영씨)를 보며 항상 의학을 공부하고픈 열망이 있었다는 그는 “늘 믿어주며 격려해준 아내와 자녀·사위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고 했다.

“한국의 친구들이 많이들 부러워해요. 장학금까지 보내준 친구도 있을 만큼 응원도 많이 해줬구요. 은퇴하면 소일거리나 하고 산다는 고정관념을 제가 깼으니 친구 녀석들에게도 자극이된 것 같더라구요.”

이씨는 인생 이모작을 꿈꾸는 이들에게 “일단 도전하라”고 말했다.

“걱정하고 계산기 두드려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어요. ‘No risk taking, No rewards(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오십 넘으면 인생 내리막길이니 이런 말 들어봤자 도움되는 것도 없구요. 두려움을 이겨낸 도전을 통해서만 정말 놀라운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이씨에게 ‘도전’은 오늘을 사는 이유다.

샌프란시스코지사=황주영 기자 [email protected]

한의사가 되려면

캘리포니아 한의과 대학 박희례 학장에 따르면, 학교별로 다르지만 평균 3200시간 이상의 학과 수업을 들어야 한다. 총 4년 과정이지만 6년 이내에 졸업해야 한다. 대체로 1학점당 학과 과목은 16시간, 임상실습은 48시간이다. 시험은 1년에 2번, 2월과 8월 치러지며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2시간 반씩 총 200문제를 푸는 형식이다.

한의과 대학 입학을 위해 필요한 자격 요건은 최소한의 대학교육과정 이수자로 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을 경우 450점 이상의 토플 점수가 필요하다. 수업과 시험은 영어·중국어·한국어 중 하나를 택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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