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만 무려 1백개 이상이나 작곡해 이른바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란츠 조셉 하이든의 작품 가운데 ‘고별 교향곡’(Symphony No 45, “Farewell”)이 있다. 이 교향곡에 고별이란 별칭이 붙은데는 사연이 있다.
하이든은 오스트리아 빈 남동쪽 아이젠슈타트에 거성을 가지고 있는 당대(18세기) 예술보호자로 알려진 헝가리의 후작 가문인 에스테르하지 궁에서 30년간 악장생활을 했다. 에스테르하지는 말하자면 하이든의 후원자였다. 교향곡 45번은 악단원들이 이 궁에 오래 머무르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심정을 에스테르하지 공이 헤아리도록 하기 위해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 악장에서 자신이 맡은 악기로 연주를 모두 마친 단원부터 한 사람씩 조용히 퇴장함으로써 사라지듯이 끝나는 이색적인 교향곡이다. 마지막에는 두개의 바이얼린만 남는다.
음악과 퍼포먼스가 함께 표현되는 이런 상징적인 제스처로 해서 주인이 단원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고 해서 ‘고별’이란 곡명이 붙었다고 한다.
LA 뮤직센터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이 이번 일요일 바로 이 하이든의 ‘고별 교향곡’을 마지막 연주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홈무대를 접는다. 바로 길건너 신축된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이 오는 10월 2003∼2004 정규시즌부터 개관됨으로써 새 홈이 되기 때문이다.
1964년에 건축돼 지난 40여년간 남캘리포니아 일원 예술의 전당으로써, 그리고 LA필의 윈터시즌 홈(서머시즌 홈은 할리웃보울)으로 사용해온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 작별을 고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선곡으로 보여진다. 상임지휘자 에사페카 살로넨은 이미 지난 11일주말 고별연주회를 했다. 로맨티시즘과 결별하고 모더니즘을 과감히 받아들인 선구자적인 말러의 ‘교향곡 3번’으로 역시 새집 이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곡이다.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 우리 한인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장소다. 60년대 중반부터 오늘까지 ‘LA 필의 홈’이 지나온 세월은 한인커뮤니티의 성장사와 같은 시기로 볼 수 있다. 동시대에 존재했다는 얘기다.
떠나온 고국 학창시절, 음악감상실에서 레코드로 또는 FM 라디오를 통해서나 간접적으로 듣던 클래시컬 뮤직을 이 곳에서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LA 필하모닉의 살아있는 사운드로 들을 수 있어서 얼마나 감개무량했는지 모른다. 그 무렵 미국에 온 한인들 가운데 클래식 팬들은 선셋불러바드에 있는 타워레코드 가게에 산더미처럼 쌓인 ‘원판’들을 보고 기절할 듯 좋아했고, 시간과 돈(티켓값)을 투자해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카를로 마리아가 지휘하는 LA 필 연주를 들으면서 미국 사는 기쁨 중 하나를 만끽했다.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우리는 서양의 대가들은 물론 정명훈의 지휘(줄리니 시절 부지휘자)와 경화·명화 등 그들 남매의 트리오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세계적 성악가인 신영옥, 홍혜경, 조수미의 화려한 소프라노에 갈채했다.
음향 시스템 등 모든 시설이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 보다 월등히 업그레이드 된 곳으로 홈을 옮겨가니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섭섭한 심정을 숨길 수 없다. 그 만큼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은 우리 한인들의 각박한 이민생활을 한숨 쉬고 넘어갈 수 있게 만들어준 정서적 고향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LA 타임스 후계자와 결혼해 남편과 아들 2대에 걸쳐 이 신문 발행인을 가족으로 둔 도로시 버펌 챈들러 여사(1997년 타계)가 없었으면 지난 40년동안 LA 필은 어디서 홈을 지켰을까. 그의 억척스런 펀드레이저 기질로 1964년 당시 돈으론 거액인 3천3백만 달러를 모금해서 3개의 공연장이 모인 LA 뮤직센터 컴플렉스를 개관한 것이다. 이 중 주 건물을 LA 필 홈으로 사용하고 그 이름을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이라고 명명했다.
디즈니 홀은 그 8배에 가까운 2억7천4백만 달러짜리 건물이다. 청중석이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 보다 1천여석 적은 2,265석이지만 40년의 세월을 훌쩍 건너뛴 초현대식 공연장이다. ‘미래의 청중’, 다시말해서 지금의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나보다. 하기야 콘서트 갈 때마다 느끼지만 대부분이 장년·노인층이 청중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러다 우리세대가 죽고나면 누가 와서 듣지 라는 의문이 누구나 들고 보면 차세대 청중 확보에 디즈니 홀은 신경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964년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 시대에서 2003년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시대까지-. 정확히 39년이란 시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