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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개 공기업의 민영화 사례

Los Angeles

2014.01.2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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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영/전 한진해운 미주본부장
얼마 전 한국철도공사 노동조합원 파업의 가장 큰 이슈는 민영화 반대였다. 이후 공기업의 민영화에 대한 찬반 의견들이 심심찮게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공기업은 정부가 자본을 투자하고 관련 법에 따라 정부가 운영하는 기업을 말한다. 대개 저개발국가에는 민간자본이 취약하기 때문에 그런 공기업이 많게 마련이다.

예전에 대한민국도 정부가 투자하여 공기업으로 출발한 기업이 많았지만, 민간자본이 점점 축적되면서 여러 공기업들이 민영화 되었다. 그 예로 대한항공공사, 대한해운공사, 대한조선공사, 대한준설공사 등 4개 공기업의 민영화 사례를 소개할까 한다.

1960년대 중반 월남전이 확대되자 전장에는 '전쟁특수'가 따른다는 것을 한진상사는 간파했다. 전쟁을 수행하려면 전략물자의 하역과 수송용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한진은 한국회사로는 가장 먼저 월남에 뛰어 들었다. 사업은 성공적이었고 하역능력과 운송 서비스에 신용과 자신을 얻게 되자 미 국방부로부터 더 많은 용역을 받게 되었다.

필요한 근로자들의 신속한 수송을 위해 한진은 당시 120인승 비행기를 구입해 서울과 월남을 운항했다. 공기업인 대한항공공사의 항공기가 홍콩까진 운항했으나 결항이 너무 잦아 인력 교대와 수급을 제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항공공사의 심각한 적자 누적과 기체의 잦은 고장으로 고민하던 끝에 자본과 경험이 축적된 한진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이리하여 대한항공공사는 1969년 3월에 공기업 중 가장 먼저 한진그룹에 민영화 되었다. 당시 보유 항공기는 8대의 구형 프로펠러기였고, 채무는 약 27억원이나 되었다.

대한해운공사는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출발한 오래된 공기업이었다. 한진이 항공공사를 인수받을 때 해운공사도 함께 민영화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해운공사는 흑자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허락되지 않았다. 한진은 육·해·공 종합운송 체제로 발전하기 위해 1977년에 한진해운을 설립했다. 해운공사를 마냥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0년후 한진해운은 승승장구 태평양으로 뻗어 나갔지만, 결국 대한선주로 민영화된 해운공사는 부실경영으로 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게 됐다. 결국 뒤늦게 1987년 한진해운이 은행 빚 4000억원과 직원을 안고 인수했다. 한국 해운의 대표주자가 30년 후발주자인 한진해운에게 흡수합병된 것이다. 이는 민영화가 돼도 어떻게 경영하느냐에 따라 흥망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5대양으로 뻗어 나가려면 더 많은 배가 필요했고 수리가 따르니 자체 조선소가 필요했다. 당시 대한조선공사는 조선업계에 불어 닥친 불황으로 법정관리로 넘어가 있었다. 3300여명의 강력한 노조도 있었다. 이런 조선공사를 한진그룹은 공개 경쟁을 뚫고 862억원에 인수했는데 그것이 오늘의 한진중공업이다.

한편 김포공항은 지리적 위치와 면적이 좁아 국제공항으로서의 한계가 있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인가. 인천지역에 관심이 많았던 조중훈 회장(작고)은 국제공항으로서의 서해 영종도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섬의 확장을 위한 준설을 결심했다. 결국 대한준설공사를 인수했고 작은 섬의 땅을 매립했다. 매립된 땅을 팔아야 회사를 운영하는데 조회장은 매각을 절대 불허했고, 준설회사의 인건비와 운영비 일체를 그룹 차원에서 보전토록 했다. 지금의 인천국제공항 역시 별 볼일 없는 섬에서 이런 과정을 거쳐 창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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