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막 출근해서 인수인계를 받자마자 내 환자 모니터의 알람소리가 요란하다. 심방세동으로 심박동수가 180이다. 의사가 'synchronized cardioversion'을 지시한다. 환자 좌심실이 수축하는 순간과 동시에 적은 양의 전기 충격을 가하여 좌심실 수축에 힘을 실어주어 심박동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전기충격 요법을 말한다.
약물요법보다 즉시 효과를 볼 수 있어 내 환자는 순식간에 심박동수가 90으로 돌아왔다. 싱크로나이즈(synchronize)는 '동시에 일어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수중발레라는 수영경기의 일종은 음악에 맞추어 여러 명의 선수가 수면 위에서 동시에 같은 동작을 연기하는 종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올림픽 경기 중 가장 아름다운 환상의 꽃이다.
싱크로나이즈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난 번 '좌심실을 퐁당'이란 글을 쓴 적이 있다. 우리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그냥 흘려 보내지 말고 좌심실에 퐁당 적셔 몇 백 번 몇 천 번이고 순환시켜 내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하자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싱크로나이즈를 잘 하면서 살고 있다. 엄마가 아기와 주파수를 맞추면 한 몸이 되어 아기의 욕구를 다 알 수가 있다. 항상 정적인 활동을 즐겨오다가 지난 해 4월부터 팝 댄스를 시작했다. 그동안 요가를 줄곧 해왔기에 별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는데 웬걸! 몇 십 년 동안 굳었던 몸 특히 발 놀림과 허리의 유연성이 큰 문제가 되었다.
내가 간신히 한 바퀴를 도는 사이에 강사는 벌써 세 바퀴를 돌고도 환상적인 포즈로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수줍고 자신이 없어 맨 뒤에서 적당히 눈치껏 해왔다. 거의 8개월을 다녔는데도 아직도 버벅대는 자신을 보고 적잖이 실망했다.
그렇지! synchronize!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리고 못해도 용기를 갖고 바로 강사 뒤에 서서 강사의 몸과 마음속에 나를 슬며시 밀어 넣었다. 호흡을 같이했다. 아! 이 어찌된 일인가. 어제까지 엇박자로 헤매던 나였는데 붉은 홍조를 띠고 땀구슬을 목에 걸고 은빛유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갑자기 고3 때 역사시간이 생각나서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탱탱했던 18세 때 역사시간은 한 없이 지루하고 엿가락처럼 축축 늘어지는 시간이었다. 수업 첫 시간에 역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지금 이 나이에 생각하면 점잖고 인격이 고매하신 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당시 벌써 70세가 훨씬 넘었고 왜소하시고 특히 말주변이 없으셔서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말이 입 속에서 맴돌다 사라지곤 하셨다.
참으로 난감했다. 역사과목도 당연히 대학입시에 반영이 되는데 어떻게 일 년을 버틸 것인가 고민하다가 묘책을 생각해냈다. 선생님 바로 코 밑에 앉아서 선생님과 같이 호흡하며 표현된 말씀보다 표현되지 않은 말씀의 의도를 찾아 적어 내려갔다.
강사 코앞에 앉아 있으면 강의내용이 100% 나에게 전달되지만 맨 뒤에서 들으면 거기에 모인 청중 수로 나뉘어져 전달된다는 믿음이 그 때 형성되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앞에 앉아 있으면 순도 100% 그대로 전달되지만 뒤에서 들으면 강의내용이 희석이 되어 그 진의를 다 잃어버리게 되고 대신 자신이 방황하는 마음대로 흘러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가끔 미국친구들이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다고 농담을 한다. 특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간다. 이럴 때 일수록 시간을 가장 값지게 보내는 방법이 싱크로나이즈 하는 삶이 아닌가 한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 닮고 싶은 사람 배우고 싶은 사람과 주파수를 맞춰보자. 호흡을 같이 해보자. 자연적으로 그 사람과 동심일체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살아 있는 동안 채우고 싶은 자신만의 빈자리가 있다.
우리의 가슴이 충만해지는 기쁨과 감동을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하는 싱크로나이즈! 삶은 더불어 즐길 때 진정 황홀하고 아름답다. 자신이 하는 일에 정열을 가지고 몰입하는 모습보다 아름다운 그림이 또 어디에 있을까.